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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비올라

Korean October 3, 2019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들이 있다. 지나칠 때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 뒤돌아보면 다시는 비슷한 상황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게 문득 아득해지는, 그런 순간들. 그것들은 작은 디테일이 하나하나 기억 날 정도로 뚜렷하지도 않고 삶을 한순간 바꿔버릴 정도로 절절한 이벤트도 아니다. 그냥 삶 속 조그맣고 사소한 순간에 가끔 잠길 때가 있다.

난 지나간 순간들이 안타깝다.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 아직도 나른한 날 옛 순간들이 떠오르면 정신이 아찔해지곤 한다. 그렇다고 만약 실제로 타임머신이 있어 되돌아 가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사이의 시간을 다 없던 일로 해버릴 만큼 아쉬움이 크지도 않거니와 지금의 삶이 퍽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난 어제의 나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조금이나마 많은 것을 느끼고,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들에는 어떠한 애틋함 같은 것이 있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로도 더욱 그립고 사무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갈 수 없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그런 것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는 더욱 하고 싶어지는 (가령 어떤 버튼 위에 누르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다면 더더욱 누르고 싶어지는) 반항 심리 같은 마음일까도 몇 번 생각해봤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에 지금은 졸업한 고등학교 후배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우연찮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옛날 학교 오케스트라를 아직 할 시절 연주했던 곡이 몇 있었는데 가만 듣자하니 다시는 그때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너무 와닿았다. 나는 바이올린을 3년, 비올라를 7년, 악기 연주를 도합 10년을 했다. 실은 그리 오래 한 것치고는 특별히 잘하지도, 악기 자체에 애착도 없었다. 잘하고 싶었던 적은 있었어도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것은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크게 애절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자체에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아마 중학교 때 제일 처음으로 연주했던 오케스트라 곡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을 텐데, 그게 기억에 아주 무겁게 남았다. 옆에서 생생히 들리는 현을 누르는 소리와 악보와 지휘자를 번갈아 보던 그 흐트러지지 않던 눈빛들이. 대회 연주에 참가하기 위해 오디션을 봐야 했는데 그걸 준비하려고 손목이 나가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연주했던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으리라. (애석하게도…)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재능의 한계를 더욱 실감했었다. 당시의 난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였고 어쩌면 우물 바닥이 살기엔 더 좋았다며 흘러가기를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론 연주하는 것이 싫었다는 게 아니다.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어 좋았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연습 전에 활에 송진을 바르며 오케스트라 탈주하고 싶다던가 리허설 영원히 불참하고 싶다던가 그런 소소한 불평을 너스레 떨던 순간이나 선생님이 늦은 틈을 타 옆 중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과 간식을 사먹으러 가던 길이 생생하다.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영화 속 음향 조절을 하듯 어느새 목소리는 한여름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달궈진 돌바닥을 타박타박 걷는 발소리 등에 묻히고 꿈을 걷고 있는 것마냥 붕 뜬 기분이 든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흐르면, 나는 이 순간을 내내 그리워하겠구나 — 하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나는 그렇더라고 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옛날에 살던 집에 와서 옷장 속 고이 잠들어 있는 비올라 케이스를 발견했다. 언제 그 속에서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

그 순간은 내게 분명 소중하고 애틋하다. 하지만 지나간 순간이기에 그러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그때의 난 지금과는 다른, 나름의 고민과 고뇌를 안고 있었고 마냥 존재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던 나이였다. 그러니 내가 더 순수했던 시절의 내가 그립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뇌의 무게만 다를 뿐 고된 건 같으니까. 그저 다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픈 것뿐이다. 그저 지금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로도 그리 반짝인다. 지금이라는 시간으로부터 눈 돌릴 곳이 필요해서, 떠나보내고 흘러보낸 시간이 조금 아쉬워서. 내일이면 매일 오는 행복에 잠식되어 잊혀질지도 모르지만 있다 없어진 것에는 빈 자리가 큰 법이다. 그것이 설령 시간이고 기억 속 한 단편뿐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