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종이로 접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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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은 창문에 입김을 불어 비춰진 달을 따라 그리고는 조금씩 지워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의 버스 안이라던가, 느즈막한 주말 저녁에 간 카페에서라던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던 (그것이 제인을 화나게 했다)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달을 찾곤 하던 그의 표정이 떠올랐다. 짙은 밤하늘의 배경에 손톱 끄트머리마냥 조그마한 달을 찾으면 순간 빛나는 그의 눈빛과, 그것을 이내 그윽하게 바라보던 우수에 찬 그의 표정 하나하나. 그리고 어김없이 유리에 입김을 후, 불어 달 모양을 그리곤 했다. 최대한 정교하고, 예쁘게 그리려는 듯 집중하던 그의 손길을 따라 제인도 책상 위에 달을 그려보았다. 그가 그린 달은 깔끔하고, 예뻤다. 제인은 그것을 따라할 수 없었다. 굳이 어여쁘게 그린 달을 이후 매정하게 지워버리는 그의 손가락도, 제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러는 거야?” 언젠가 제인이 물었다. “이군 넌 참 특이한 것 같아.”

“전혀…” 이군은 그럴 때마다 멋적게 웃었다. 웃을 때마다 길게 늘어난 초승달처럼 입가에 파이는 보조개를 보기 위해서 한 말이라도 전혀 과언은 아니었다. “그럼 왠지 진짜가 아닌 것 같잖아? 달이 없는 곳은 진짜가 아니고, 비현실이라면, 모두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말 알 수 없는 말뿐이야,” 제인이 투덜거렸다.

그렇게 대꾸했지만, 제인은 언제나 불안했다. 이군이 언제나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의 오랜 친구인만큼, 그를 아주 오래 봐왔기에 더더욱. 잔업이 많아 만나기로 한 카페에 서류라도 들고 오는 날이면 그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그의 눈은 언제나 공허했고, 늘 지쳐보였으며 손길조차 힘이 없었다. 밥을 먹을 때나, 책을 읽을 때도, 그는 이따금 고개를 들어 줄곧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리곤 제인과 눈이 마주치면 그 바보 같은 보조개 보이는 웃음을 변명 삼아 내비치고는 다시 몰두하는마냥 시선을 돌리곤 했다. 이군이 언제부터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겨우겨우 기억의 한계까지 다다를 정도로 생각을 해본다면 아마 제일 처음으로 그것을 목격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았다. 보던 책장 너머,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공상하며 창문에 달을 그리고 있던 그의 모습이 계속 단꿈마냥 아른거렸다.

사실 이군의 고민이 뭐였는지도 제인은 잘 몰랐다. 이군은 늘 제인이 자신이 뭔갈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런 제인마저도 이군이 어느 정도 날을 세우고 있다는 것, 또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세계를 조금 보여줄 테니 그 이상은 넘어오지마!’ 라는 경고판처럼. 그는 이따금 눈치없이 회식에 끼어서 여직원한테 추근덕대며 분위기를 팍 망쳐놓는 상사에 대해서 불평을 하기도 했고 그날 새로 갔던 레스토랑의 리조또가 가격에 비해 맛이 없었다는둥 사사로운 불만을 늘어놓기도 했다. 키우던 고양이가 자기 손을 물었다, 아끼는 신발의 깔창이 까질 것 같아 불안하다- 정작 제인이 진짜 듣고 싶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어딘지 아파보였다. 입술은 가느다랗게 미소를 지었지만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리고 있었으니. 이런 자잘한 것들이라도 말해줄 테니 그걸로 만족이라도 하라는 걸까, 제인은 언제나 생각했다. 그게 꼬인 걸 알면서도 제인이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라도 꺼내려 들면 그런 말들로 바로 화제를 바꿔버리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군이 감기에 걸려서 며칠 간 집에서 못 나올 때부터였나, 제인은 그때부터 종이로 달을 접기 시작했다. 달이 그의 유일한 탈출구라면, 하늘에 떠 있는, 잡을 수도 없는 달 말고, 손에 잔뜩 잡힐 수 있는 비상구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군은 분명 실없이 웃으며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종이의 각진 부분을 반듯하게 접으며 제인은 언제나 이군의 허탈한 웃음을 생각했다. 다분히 부질없는 짓일지도 몰랐다.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의 직장인이 매일 같이 찾아와 색종이를 사갈 때의 문방구 주인이 짓던 표정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왠지 볼이 붉게 물드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내킬 땐 보름달을 접기도 했고, 김 나는 갓 만든 오므라이스 같이 어정쩡한 모양의 달도 접었지만 역시 제일 많이 접는 것은 이군이 제일 좋아하는 초승달이었다. 그녀가 접은 종이 달 중에서는 비뚤거리는, 손때만 잔뜩 탄 못난 달도 있었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끝으로 반듯하고 단아한, 곡선이 아름다운 달도 있었다. 접을 때만큼은 제인 본인도 아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군을 제외한 생각을. 그녀에게만큼은 털어놔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군이 더 이상 웃을 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더욱 컸다. 서른 몇 번째 종이 달을 접을 땐 제인은 완성된 종이 달을 들어 창가 가까이 들어보았다. 진짜 달이 오히려 가짜 같을 정도로, 조그맣게 보였다. 멀리 있는 신기루마냥 조그맣고 조용하게. 그에 비해 그녀가 접은 달은 크지막했다. 평범한 색종이로 접은 것인데도 그녀의 손바닥만했다. 제인은 그 종이 달이 이군에게 손에 잡히고, 닿을 수 있고, 멀지 않은 비상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몇 번의 주말이 지났다. 이군은 그 사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늘어놓았다. 자신의 고양이가 나가서 나뭇가지를 주워왔다던지, 새로 시도해본 허브 치즈가 그렇게 모닝롤이랑 잘 어울린다던지. 언제고 진짜 내비추고 싶은 마음은 아닌 것들, 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는 끝내 들어주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시선은 그의 두 눈에 고정하여, 경청하듯.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시간이 나면 고양이를 보러가겠다, 그가 극찬하던 치즈를 한 번 맛보겠다, 하는 무의미한 리액션. 찰리 채플린이 연기하던 희극 같았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자지러지게 웃고 몸 개그를 선보이는 공연의 주연이 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미세하게 찌푸린 이군의 미간을 지켜보는 것이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될 텐데, 라는 생각만이 계속 맴돌았다. 종이 달이 오십 개가 넘어 세는 것도 힘들어질 때의 어느 주말, 제인은 휴가를 냈다는 이군의 전화를 받았다.

“휴가 냈어,” 연결음이 멈추자마자 다짜고짜 내뱉은 이군의 말에 제인은 다시 한 번 물어야 했다. “휴가 냈다고.”

“어…” 제인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그때도 그녀는 종이 달을 접고 있었다. 언제나 무리하던 이군에게 숨 고를 틈이 생겼으니 다행인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잘됐네.”

“완전 찍혔겠지. 안 그래도 눈치 잔뜩 주더라. 프로젝트가 몇 갠지 뭔지… 제일 바쁜 거 내가 마무리 하고 왔는데 무슨,” 이군이 말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늘어놓으며 정적을 채웠다.

“뭐할 셈이야, 이제부터?” 제인이 말했다. 정말 하고 싶은 거나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휴가를 쓰겠다고 다짐하던 그가 왜 아무런 기별 없이 무작정 휴가를 냈는지 살짝 의아했다. “계획은 있어?”

정적이 흘렀다. 이군의 나지막한 숨소리는 계속 들렸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이군?” 그녀가 되물었다.

“으음, 잘 모르겠는걸. 일주일이니까 느긋하게 하고 싶었던 거라던지…” 이군이 말했다. 그는 살짝 기운이 없는 듯 했다. 이조차도 그에겐 어려운 질문이었던 걸까.

“너가 하고 싶었던 게 뭔데?” 제인이 물었다. 무심코 물었던 것이었지만 아차 싶었다.

“몰라,” 이군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대책 없다, 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이군과의 마지막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이군은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친구들이 가끔씩 보내주는 여행 사진에 좋겠다- 라는 단조로운 반응만 보일뿐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인은 종종 그를 미술관이나 수족관, 바다 등 다양한 곳에 끌고 갔었다. 집에나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재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그의 삶에 색깔을 입혀주고 싶었던 취지였지만 이군은 어딜 가도 같은 표정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어쩐지 서글픈 눈빛.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의 표정은 오히려 그 마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는 듯 단념한 표정이었다. 미술관의 그림을 보는 쳐진 그의 두 눈은 죽은 생선의 눈알마냥 초점이 없었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도 붓감과 페인트 사용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그의 엉뚱한 대답에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할 수 없었다. 기분 전환이나 시켜주자고 했었는데 어쩐지 돌아오면 그녀가 더욱 지쳐 있곤 했다. 그러니 차라리 다행인 것일지도 몰랐다. 이군은 적어도 휴가를 낼 정도로 본인의 한계를 알았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자각할 정도로 현실에 붙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었다. 제인은 상자를 거의 채운 종이 달들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몇 번째로 접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종이 달의 뾰족한 모서리가 그녀의 손가락을 찔렀다. 피가 나진 않았지만 제법 따끔해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언젠가 이군에게 그녀가 접은 모든 종이 달들을 선물하게 된다면 꼭 말해주자고도 곱씹었다. 그리고 그 뾰족한 모서리도, 이군이 휴가를 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모두 그녀의 안일함이었다.

사흘, 나흘이 지나도 이군에게는 연락 한 통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시절까지, 그리고 직장인인 지금까지도 이틀 이상 연락이 끊긴 적은 없었기에 불안했다. 사흘까지는 제인조차도 일이 바빠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기에 다른 곳에 마음을 둘 겨를이 없었지만 그 이후로 시간이 너울너울 넘어가자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가 스쳤다. 나흘이 딱 지난 그날, 제인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빈 검은 공간이 신경쓰여 밥이 곧잘 넘어가지 않았다. 울리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핸드폰을 보며 제인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췄다. 이군은 아이가 아니다. 연락 없이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라며. 이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연결음 뒤에는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냉랭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뭔가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필사적으로 종이 달을 꾸역꾸역 접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도 있었다. 은연 중에 탈출구를 잔뜩 만들어 놓으면, 다 접을 때쯤에는 이군이 마법처럼 뿅- 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제서야 뭔가 와닿았다. 이군은 좀처럼 그녀에게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소한 것들을 들먹이며 그녀가 그 근원지를 파고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러니 이 휴가도 핑계일지도 몰랐다. 왠지 이군이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군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군이 사라진지 5일 정도가 흐른 날, 제인은 이군이 가볼만한 곳을 들렀다. 카페. 그들이 앉아 일상의 온갖 잡생각과 고민 (물론 제인 쪽의 일방적인 하소연이었지만)을 털어놓던 곳. 제인은 그곳에 앉아 창문에 입김을 호, 불어 초승달을 그렸다. 입김이 뿌옇게 서린 유리에 손가락을 꾹 눌러 달 모양을 내자 그 틈새로 밤의 불빛이 새어들었다. 그 청량한 틈새로 시선을 옮기자 진짜 달이 보였다. 매캐한 매연 연기로 휩싸인 아스팔트 정원 위에, 다른 세계에 있는마냥 떠 있는 초승달. 이군은 줄곧 이것을 봐 왔던 것이다. 비좁은 통로 끝의 도피처. 이군은 바쁜 일상 속에 통로를 끼워넣었다. 그의 도피처는 어디인지, 제인도 잘 몰랐다. 그것이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목적지는 동네 공원 언덕이었다. 제인과 만나지 못할 때 이군은 언제나 이곳을 찾았다고 했었다. 산책로를 쭉 지나 길을 타고 올라가면 큰 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만 가로등 같은 게 전혀 없어 오솔길을 걷는 내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애를 먹었다. 이군은 이 어두운 길을 언제나 말없이 오갔던가, 싶어서 기분이 어쩐지 씁쓸해졌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동네는 뭔가 비좁았다. 좁은 틀에 갇혀 있는 불빛과 각진 건물 안에 통조림마냥 담겨 있는 사람들. 그 위에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달. 그 달과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제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군이 이곳에서 뭘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6일째 되는 날, 다음으로 찾은 곳은 도서관이었다. 이군은 전혀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었기에 앉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호했다. 애초에 행동반경이 직장이랑 집뿐이어서, 그 사이를 배회하던 이군을 밖으로 끌고 나온 것도 제인 본인이었다. 이군은 도서관에 들어서면 풍기는 낡은 종이의 냄새가 좋다고 했었다. 손끝을 스치는 종이의 감촉도, 사람들의 손을 여럿 거친 책장도, 작가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글도. 무엇보다 무언갈 읽으면 제 삼자, 즉 단순히 구경꾼이 되는 일이 좋다고 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제인이 손끝으로 책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책을 읽어서 몰입된다는 건, 그 속에서만큼은 모든 책임도, 의무도 없으니까. 그 말을 할 때의 이군 표정이 언뜻 뇌리를 스쳤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입만큼은 애써 웃고 있던 그 안쓰러운 얼굴을. 도서관을 뒤로 하고 다음 장소를 찾을 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군이 찾을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군은 무기력했고, 힘들어 했다. 그런 이군이 도피처 삼아 찾을만한 곳이 없었다. 그제서야 이군이 그동안 알게 모르게 흘렸던 신호들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때 신호등마냥 그녀에게 닿았다면 좋았을 텐데. 빨간 빛, 푸른 빛, 바로바로 알 수 있도록.

이군이 말했던 휴가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녀가 이군을 끌고 갔던 곳 이곳저곳을 들렀지만 이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녀 멋대로 그를 데리고 갔던 곳들이라 이군이 그곳에 갔을 리 없었다. 그래서 제인은 이군의 흔적을 쫓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날 저녁까지 연락이 없으면 신고라도 할 셈이었다. 문자라도 한 통 주지, 라는 원망에 찬 생각도 이제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제인은 다시 이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없는 연결음이 계속되었다. 일주일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이번에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쯤되면 잘 알 텐데도 제인은 언제나 연결음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 ‘혹시나’ 라는 것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언제나 더디게 간다고 했던가, 나름 잡생각을 치우며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제인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눈길 닿는 곳에 시계를 두며, 그녀는 계속 기다렸다. 밀린 드라마를 보는 것도, 평소에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먹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잡생각을 치울 수 있는 순간은 종이 달을 접을 때였다. 접힌 선을 따라 또 접고, 펴고 손끝으로 선을 타는 시간만큼은 빠르게 흘렀다. 마치 그녀의 온 시간과 생각을 종이 달이 먹는 것마냥.

그래서 해가 너울너울 질 무렵에 종이 달이 든 상자를 들고 이군의 집으로 향했다. 왜 그 상자를 가지고 갔는지는 제인도 몰랐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끝은 감정으로 잔뜩 얼룩져 있었고, 마음 한 줌 마저 너덜너덜해진 그녀는 상자를 꼭 쥐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그녀의 볼을 스쳤고 상자를 꼭 붙든 그녀의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려왔다. 이군이 없어졌다. 업무를 재촉하는 상사도, 한참 밀린 일거리도 짜증이 나는데 더욱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녀의 무력함이었다. 그간 이군의 상태를 알고도 눈치 못 챈 척, 모르는 척 까무룩 넘어간 자신이 한심했다. 이군은 그녀에게 선을 긋고 있었지만 사실 먼저 외면해 버린 것은 그녀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군이 불편해 할 것 같으니까- 라는 이유 하에 안심하며 눈 감고 귀 닫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이군의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발바닥이 굳게 얼어버린 땅에 닫는 그 모든 순간이 버겁게 느껴지고 이군의 부재가 잔잔히 묻어나오는 그의 거처의 모든 것-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현관, 소리 없는 공간- 그런 것들이 절절하게 와 닿을까봐 두려웠다. 종이 달은 그녀의 품 안에서 흔들렸다.

이군의 집에 도착할 때쯤 해는 거의 넘어가고 어둠이 드리워질 시간이었다. 이군의 집 앞에서 제인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의 현관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지만 이군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휴일에 그녀가 무작정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때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불평을 하곤 했다. 그러고선 비밀번호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그게 이군이었다.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데 초인종으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 뒤를 이을 정적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막막함에 제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가, 제인이 생각했다. 매 순간 네가 느꼈을 기분. 그래도 그곳에 마냥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단순 가랑비일줄 알았던 것이, 무섭게 내리치는 소나기였기 때문이다. 행여나 상자가 젖을까 제인은 그것을 꼭 품에 끌어안고 괴로운 마음을 뒤로한 채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섰다. 꺼진 불과 아무런 손길을 타지 않은 가구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알고는 있었다. 다만 확인 당하고 싶지 않았을뿐. 그제서야 상자를 손에서 놓았다. 그녀의 마음과 함께 상자는 손에서 떨어졌다. 수많은 종이 달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얀 달들이 바닥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번개가 쳤는지 불 한 줌 없는 거실에는 일순 섬광이 스쳤다. 이어서 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어찌나 컸는지 귀에서 메아리마냥 울렸다. 창문이 열려 있었던 모양인지 바닥에 있던 종이 달들이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춤을 췄다. 마치 토네이도가 들이닥친 것처럼, 달에 달이, 하나하나 이어서 공중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희고 맑은 달이, 단순히 이군이 그린 달이 아닌, 손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이, 어여쁘고 흰 종이 달은 밤을 타고 너울거렸다. 그것보다 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에 비춘 어떤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집에 불빛 하나 없어 몰랐지만 번개가 치자 어둠에 시야가 점차 익숙해졌다. 약간 지치고 서글픈 눈매의, 힘없는 이군.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종이 달은 춤추고 있었으나 시간은 멈춘 것 같았다. 목소리도, 눈빛도 그곳엔 없었다. 이군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공중에서 춤을 추다 피고 진 꽃잎처럼 바닥에 떨어진 종이 달 하나를 주웠다. 그는 항상 종이 달을 그린 손끝으로 종이 달을, 그 흰 곡선을 어루만졌다. 그는 오랫동안 종이 달을 쳐다보았다. 종이 달 하나하나를 관찰하듯, 그의 눈빛은 초승달의 곡선을 타고 움직였다. 이윽고 이군은 종이 달을 들어올리더니, 아무 말 못하는 제인에게 건넸다.

“역시 이걸로 힘낼 수 있겠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초승달마냥 아름다운, 깊게 패인 보조개가 쏙 들어간 그 웃음으로.

이군은 돌아왔다. 제인은 끝내 그에게 묻지 못했지만, 이군이 괜찮아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단편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사실 그마저도 오늘 사진을 찍으러 가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 옆에 조그맣게 떠 있는 초승달이 예뻐서, 순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을 사진으로 포착한 것이다. ‘재인’ 이라는 이름은 내 본명이 될뻔한 이름이다. 엄마는 나를 ‘재인’이나 ‘선우’로 짓고 싶으셨다는데, 전혀 다른 (흔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군은 말 그대로 이군. 정말… 성의없는 이름이다. 단편 소설을 쓰는데 굳이 거창한 이름을 짓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이 이야기에는 이름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 여차하면 A양, B군이라고 지어버릴 정도. 약간 뉴스에 나올 법한 이름 같은? 다만 알파벳이랑 한글을 치기엔 왔다 갔다 하기 힘드니까 이군이라고 지어버린 것이다.

이 단편은 어느 정도 (둥글게 보자면) 경험담이다. 물론 나는 종이 달을 접지 못하고 직장인도 아니지만,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앓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 친구는 이따금 사라져 가끔씩 모습을 보인다는 것 정도는 실제로 있는 일이다. 마침 그 친구와 달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기에, 사진을 찍으면서, 달을 향해 손을 뻗어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문득 문득 났을뿐. 그 친구, 일명 이군은 밤과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우리의 대화가 주로 밤에 이뤄져서인지는 모르겠다만 딱 봐도 밤을 거닐고 있을 것 같은 사람. 눈길, 목소리 모두 밤과 어울리는 사람이다. 애석하게도 난 그에게 종이 달을 접어주거나 (너무 멀리 살기에) 탈출구를 만들어주진 못하나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조금은 느슨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글이다. 난 이군을 매우 좋아한다. 그는 꽤나 좋은 친구고, 힘든 여정의 동반자다. 항상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친구다. 역시 이번에는 꼭.

오늘의 추천 곡은 콜드플레이의 The Scie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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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밤

지평선을 뒤덮던 햇살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황혼 속 빛의 시작과 끝을 구별하지조차 못하게 될 때, 나그네는 파도가 머물던 곳을 지나간다. 바다는 해가 지고 떠도 계속 말을 내뱉는마냥 울렁였고 발 아래 모래에 남겨진 발자국에는 그리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바다 속 손가락 사이를 가르는 얼룩진 물결에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그네의 발길이 지나는 모든 길에는 마음이 흔들린 흔적이 있다. 밤이 지나고 보낼 연서를 마음에 꼭 담아둔 채, 그는 발길을 바삐 한다. 반딧불의 향연은 그가 걷는 길을 비추고 그 흔들리는 불빛조차 그의 마음 한 가닥 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연서는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울렁이는 마음을 끝내 감추고 숨겨, 태가 나지 않을 때까지 삼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생각 한 켠에 잔뜩 요동치고 있는 그리움이 그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연서를 쓸 적을 생각했다. 연서를 쓴 종이를 고이 접어 봉투 입구에 예쁜 토끼풀 한 가닥을 묶어놓았던 그 손길을. 그도 안다. 사실 그 연서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음을. 마음을 삼키고 숨겨, 옮겨 적으려는 순간 그 마음은 두려워 꽁꽁 숨어버렸다. 그녀가 봉투를 열어 연서를 꺼내보아도 연서는 단어 하나, 또 마음 하나조차 속삭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그네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종소리 나는 아침이 와서, 그가 그곳에 다다랐을 때, 이것을 핑계로 닿을 수만 있다면, 그의 비겁한 마음도 조금은 괜찮아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