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ha, Sophie

벌써 2018년이다. 난 언제나 내가 길가의 잡초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잡초가 무럭무럭 자라버렸다. 이제는 내 나이의 앞자리도 더 이상 1이 아니다. 싱가폴에서도, 한국에서도 성인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야 어른이라는 것이 청소년으로서 얻을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이었지만 아마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발길 끊긴 섬마냥 계속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조금 대책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 매뉴얼이라도 있어야지 싶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만 자라 갑자기 세상에 내던져졌는데, 그렇다고 어른에게 어떻게 어른답게 사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답이 있긴 할까? 나는 어른이어도 어른답지 못한 사람들을 수두룩하게 봤고, 아이여도 어른만큼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도 봤다. 그 애매한 중간 선을, 난 넘을 수 있을까?

난 문제가 많다. 살면서 그늘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해를 등지는 그늘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늘이 없다, 라는 말이 좋다. 어두운 곳도, 서늘한 곳도 없다는 뜻이니까. 해처럼 빛나는 사람이 부럽다. 언제나 사랑 받으면서 자랐구나, 소리를 듣는 사람들. 주름진 곳 하나 없는 그런 사람들. 무엇을 보고 듣던, 마냥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 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내게 문제가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저기 멀리 해가 있다면, 난 빛 한 점 없는 그늘 같은 느낌. 난 정말 꼬였고, 생각도 지나치게 많고, 사서 고생한다. 욕도 잘하고 미련만 많아서는 손에 쥔 것은 그것이 설령 기억뿐이라도 잘 놓지 못한다. 피해 입는 것은 정말 싫어하는 주제에 남에겐 피해만 끼치고 다닌다.

그런데 그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늘을 넘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난 내 좋은 점을 생각한다. 난 혼자 있어도 에너지를 얻는다. 하루종일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노래를 들어도 괜찮다. 성격은 더럽지만 생각이 많다는 건 언제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힘들게 좀 시간은 걸려도, 난 같은 고민으로 오래 앓은 적은 없으니까. 난 예전을 그리워 한다. 예전의 사람들, 그 기억들, 그 속의 시간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과거는 손 쉽게 놓을 수 있다. 나는 언젠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울 것이고, 전망 좋은 집에 주말에는 사놓은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잔뜩 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콜마르에서 일주일, 루체른에서 한 달, 그리스에서 일 년을 묵고 싶다. 그곳에서는 사진과 글을 담은, 수필을 쓸 것이다. 그리고 정말 언젠가, 먼 미래 돈을 많이 번다면 알로하 소피 라는 아담한 카페를 차릴 것이고 그곳을 운영하면서 책을 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리운 옛날 이야기나 차마 걸어 지나치지 못하는 현재는 가볍게 걸어갈 수 있다. 무표정 인상이 우울해 보인다는 평을 듣지만 난 볼에 살짝 파인 부분이 있어 웃을 때 보조개가 두 쌍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난 생각이 많아서 순간을 사는 것이 어렵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과 순간들이 있을 때, 매 순간을 아낀다. 그러니까, 난 그늘이지만 그늘을 사랑한다.

난 정말 오랜 길을 걸어왔다. 2017년은 내게 정말 힘든 해였지만, 그리고 그렇게 고생하고도 2018년은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난 괜찮다. 적어도 내 그늘을 알아봤고, 그늘을 사랑할 방법도, 빛을 끌어안을 방법도 찾았으니까 괜찮아. 잘 가 2017. 먼 훗날엔 어쩌면 조금은 보고 싶을지도 모르지.

Advertisements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하는 이야기

생각은 힘이다, 라고 여러 번 말했었다. 이것은 내 좌우명이자 동력이기도 했는데, 난 이 한 마디를 되뇌이며 내 자신을 꽤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강점, 약점, 그리고 한없이 어두운 밑바닥까지도, 모두 세세하게 꿰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원래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그 한 해에 대한, 그 속에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모습을 곱씹으며 되돌아보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게 그 해에 알아낸 내 자신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머릿속에 입력하여 다음 해에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이, 모두의 이상적인 연말 계획일지도 모른다. 신년 계획이라는 것도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난 그 루트가 제법 능숙했었다. 그 과정을 하나 하나 즐겼다고 해도 과연 과언은 아니다. 내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그것을 이용해 다음 해의 나를 상상하는 것도. 생각은 힘이니까,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요즘 나는 더없이 회의적이다. 나는 원래 마무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더더욱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일상 생활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아니라 (적어도 최소한은 지킨다고 생각한다) 작년이나 그 전 해나, 글이던 학업이던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내가 회의적인 부분은 대인관계에 대한 것이다. 올해처럼 사람을 많이 만난 해가 없다. 서로 다른 삶을 살다 불쑥 만나게 된 관계도, 얼굴만 알다 갑작스럽게 발전된 관계도, 위태롭던 것이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게 되는 관계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고작 1년 새에 일어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벅차다. 나는 말주변이 없고 발이 좁은 사람이라 그렇게 사교성이 좋지는 못한데, 사실은 조금은 무리하고 있었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건 별로 없어서 사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 싶다. 난 올해 모임에 나가고 약속을 잡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처음부터 그 사람을 알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누군가를 깊게 알게 되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고 사랑스럽지만, 그 깊어지는 과정에 진입하기는 어렵고, 그렇게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얘기와, 질문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게 무색할 정도로, 어쩐지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이득을 바라고 누구와 연을 쌓는 건 꽤 속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관계에서 얻는 안정감이라던지, 같이 있을 때의 편안함과 대화할 때 느끼는 코드라던지, 그런 것들 말이다. 어쩐지 플러스를 바랐는데 마이너스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연말에 느끼기에는 퍽 좋은 추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얇고 넓게 사람을 아는 것보다 그 사람의 성격부터 취향,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까지 알게 되는 걸 좋아할 정도의 깊고 좁게 사귀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관계를 만들 때의 내 신념이기에 내 인간 관계는 꽤나 협소한 편인데 그마저에서도 별로 좋지 못한 결말을 맺은 적도 있다. 내 자신이 바닥에 치닫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인지 나는 사람의 바닥을 보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 그 과정부터 결말까지 어떻게 되는지 내가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 몇 년 전에 나를 도와준 사람이 바닥에서 맴돈다. 한 때는 그 사람 때문에 살고 싶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런 사람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마저도 그는 들을 여유가 없지만서도. 관계가 바닥을 치고, 깨지고, 부서지고, 난 그 관계를 주워담으려다 손끝을 다치고- 나를 잘 아는만큼 대인관계도 수월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오만이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지금, 난 결국 그나마 괜찮았던 관계마저 망가뜨리게 되었다. 없느니만 못한 사이일지도 모르는 관계도, 서로 마음을 다쳐 상대하기를 그만둔 것도.

그러니 난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좋은 결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겐 역시 내가 사는 게 최우선이다. 내가 살고 숨쉬는데 있어 내겐 내가 제일 중요하다. 그 전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게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기분이, 내 안위가 그들에 좌우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좋은 친구, 부모님의 좋은 딸, 완벽한 언니. 다 멋진 타이틀이지만 그 틀에 나를 끼워맞추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그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필요 없다.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나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왔기에,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가길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늘을 사랑했다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었다. 어떨 때는 그늘밤 아래 나누던 향수로 가득한 이야기를 밤새 곱씹기도 하며 돌아가기를 원했고, 어떨 때는 마냥 발걸음이 닿는대로 늘 어디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햇살이 손바닥으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른한 낮에 나와 마음이 망아지마냥 마구 날뛰어도,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도 햇빛은 사방으로, 그리고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니 막아질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늘을 쫓아다녔다. 나뭇잎 아래, 그 조그마한- 어쩌면 손바닥보다도 작을 그 작은 쉼터에서 숨을 돌렸다. 그늘은 많은 말을 속삭이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여름의 끝자락에 걸터앉아 바람으로 옷 끝에 드러난 목덜미를 간질이거나, 해가 무릇 지고 달이 다시금 찾아왔을 때 온 세상을 끌어안고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언제고 조용히, 눈을 떠보면 옆에 있었다. 그러니 그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불가항력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버드나무 아래서는 그 사이에 지는 얼룩진 햇빛을 보며 마냥 머물라며 이야기 하고 싶었고, 잠 못 드는 밤에 창문을 열어놓을 테니 바람으로 불어와 달라고 하고 싶었다. 무르지 않은 부드러움, 그것이 좋았다. 나는 그의 모든 그늘을 사랑했다.


간만에 어쩐지 소설다운 글을 써본 것 같다. 근래에는 일이 많아서 한시도 한 숨 돌릴 새가 없는데도 이렇게까지 살고 있다- 하고 절절히 깨달았을 때가 없다. 요즘은 혼자 서기를 배우고 있다.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이 세상에 내던져졌으니 바닥에 기더라도 움직이는 것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냥 추상적으로 들리더라도 이것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너무 많은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눈길을 돌리면 너울너울 지고 있는 해가 보인다. 뛰는 새 뺨을 스치는 바람이, 이른 아침 방을 한 가득 채우는 빛이, 새벽에 연결음이 끊기고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돌아가기를 원해도 아득한 미래를 걷고 있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늘이 있다. 그늘을 사랑했으니 빛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위안일 것이다.

 

나의 옛날 이야기

지나간 시간의 기록을 보는 건 언제든 재미 있다고 생각한다. 난 예전에 일기를 꽤나 자세하게 썼는데, 누구와 뭘 했고 어딜 갔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세세하게 적곤 했다. 그날 하루 좋아하는 남자애한테서 종이 학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그날 과학 보충 수업이 끝나고 먹었던 아이스크림 맛이 어땠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 강아지가 매우 귀여웠다던지 하는… 하루하루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을 정말 빠짐없이 썼는데, 이건 마치 약간의 강박증과도 같아서, 그 순간을 이루는 작은 디테일이라도 빼놓으면 어쩐지 내내 찝찝한 느낌이다. 예전에 가족끼리 여행을 꽤나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여행을 다니며 있었던 일을 기록하라며 공책 하나를 줬었다. 파란 배경의 스누피 그림이 귀여웠던- 그럴 때면 모든 것을 적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간 곳, 느낀 것 하나하나 모두 적곤 했다. 좋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정말 괴롭다.

그러니까 난 순간을 기록하는 게 좋다. 그게 사진을 찍던,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던, 글을 적던, 순간의 반짝임을 기억 속에 담는 게 좋다. 그것이 설령 마냥 말랑말랑하고 예쁜 그림이 아니더라도 연필 꾹꾹 눌러 적는 글이 좋다. 어제의 일들을 잊어, 라고 말하기엔 난 모든 순간의, 실수투성이 헛점 가득한 내가 좋고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는 것이 재미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난 오늘 아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옛 학교를 방문했다. 내가 숨쉬고 매일 뛰어왔던 복도를 거닐며 난 향수에 잠겨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학생들이 오고 간 흔적이 남아 있는 빈 복도는 아주 조용했고, 이야기에는 기억이 실려 구석구석 울려퍼졌다. 너무 궁지에 몰릴 땐 한 구석에서  사탕 하나 손에 쥔 채 숨죽여 울고, 한때 학년 차석을 차지할 정도로 수학을 (지금의 나로서도 매우 의외지만) 정말 잘했고, 모 도넛 브랜드와 흡사한 교복에 대해 투덜대던 그 시절의 나를 생각했다. 난 그 시절 꼭대기 층에 서서 언젠가는 숨막히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3년 뒤 같은 곳에 다시 서서 나를 마주볼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내 옛날 이야기를 알아볼 누군가가 있었을까.

난 그저 일개 사람이기 때문에 내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없다. 내게 모진 말을 내뱉고, 그날의 기분을 잡초마냥 짓밟은 사람이라도 어쩌면 무릇 잊혀질지도 모른다. 난 정말 잡초 같아서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말보다, 며칠 전 엄마가 해준 정말 맛있었던 햄과 치즈 토스트가 더 기억에 남는다. 엄마한테 다시 해달라고 해야지, 라는 것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단순한 사람이라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망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기억의 동반자 같은 것이라, 좋지 못한 꿈을 꿀 때 눈을 감겨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난 오늘 하루의 노을 색깔을 기억할 것이다. 여름 그 중간에서, 남색 끝자락에 햇빛이 따뜻한 선홍빛과 산뜻한 주홍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그 사이로 비행운이 지나가는 것을 두고두고, 달콤한 사탕 같은 것을 입에 오래 오물거리고 있듯 곱씹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와, 열 다섯의 나와 마주했던 자리, 그리고 그 노을. 그 세 가지를 오래오래, 기억하겠지.

오늘 집에 올 때쯤에는 뉘엿 지던 해가 완연히 저물고, 밤을 비추는 빛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난 노래를 들으며 그 아래서 춤을 출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발걸음 하나를 가볍게 움직이고, 노랫소리를 읊조리며.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기억해 마땅한 하루. 난 기억의 옷깃만 만져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옷깃, 그 자락 하나로 충분하다. 전체를 볼 방법이 없으니, 늘 전체의 일부만 어렴풋이 볼뿐이다. 그 옷깃에 스며든 쪽빛, 그 기억 사이로. 어차피 평생 진리의 조각만 찾아다니는 삶이니,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시간이 흐른 언젠간, 이 순간조차 나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 난 이 글을 읽으며, 이때를 회상할 것이다.

오늘의 추천 곡: 아이유 (원곡 이상은)- 비밀의 화원


추신. 요즘 본업인 소설보다 수필 같은 글을 조금 더 많이 적는 것 같아서 약간의 위기감도 들기 시작했다. 약간 생각의 흐름 같은 글이랄까. 시작해놓은 장편 소설은 4부만 남겨둔 채 끝내지 못한 상태니까… 하지만 뭐 어때.

뜨거운 여름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싱가폴은 365일 덥지만 난 워낙 추위를 잘 타서 싱가폴의 날씨가 퍽 몸에 맞았는데, 요 근래는 그런 내게도 녹아 흐를 것 같이 더웠다. 그렇지만 8월에 접어들며 저녁에는 조금 시원한 바람이 돌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도 정말로 (개학이 내일인지라) 절절히 와닿고, 나도 많이 자랐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가 있다. 생명 하나하나가 뜨겁게 불타고 모든 에너지가 불빛마냥 휘몰아치는 여름은 이제 조금 식었다. 그 불꽃들은 점차 사그라지고, 차분해져서 더욱 견고한 무언가로 거듭난다. 사실 이번 방학은 정말 재미 있게 보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이든 (좋은 쪽이로든 나쁜 쪽이로든…) 나름의 성장을 한 것 같다. 이제 두 달이 있으면 정말로 난 성인이 되는데 그간 내가 이런 어른이 되어도 되는 걸까- 하며 초조해 했다면 지금은 이대로 주욱 나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정비의 의미로 나에 대한 몇 가지를 끄적여 볼까 한다.

1. 난 버스 타는 것을 꽤나 좋아해서 전철과 버스 중 고르라면 무조건 후자다. 난 특히나 버스에서의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그것도 느즈막한 오후에 여유로이 음악을 들으며 가는 길이라면 더더욱.

2. 늦은 밤에 배에 배게 하나를 깔고 엎드려 누워 음악을 들으며 쓰는 글보다 더 잘 써질 때는 없다. 가끔은 소리에 심취해 글 쓰는 것조차 잊고 눈을 감아버릴 때도 있지만.

3. 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있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이다. 일주일 넘게 혼자 있어도 끄덕없다.

4. 어렸을 적에 엄마가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보름달이 보일 때마다 두 손 모아 소원을 빌곤 했는데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금도 이따금 소원을 빈다.

5. 첫인상이 유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인데, 그 평은 얼마 안 지나 (많이) 바뀌곤 한다.

6. 난 꿈을 조금 다이나믹하게 꾸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꿈, 도망치는 꿈, 이렇게 단편적인 내용이라면 난 수녀원에 갖혀 그 중에 스파이가 되어 탈출하는 꿈이라든지 독일군이 부활해 나라를 습격해 폐허가 된 도시를 누비는 꿈이라든지 (둘 다 실제로 꾼 꿈들이다) 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영화 뺨치는 꿈을 자주 꾼다. 꿈도 작가빨 받는 걸까, 라고 누군가 말했다.

7. 어딘가에서 사오는 군것질거리는 무조건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렸다 (화장을 지우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등등) 최상의 편한 상태에서 먹어야 한다.

8. 생 굴을 못 먹는다. 곱창도. 둘 다 먹고 크게 탈이 난 적이 있다. 뭐랄까, 맛보다는 사실 그 기억 때문에 못 먹는 것 같기도.

9. 난 내 인생에 후회 한 점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그 이후에 자기 합리화를 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나가고 나서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버리니 안타까워할 틈이 없다. 실제로 지나간 일을 붙들고 있지 않는다. 나도 사람이니 ‘아, 이건 이럴걸’, ‘이랬어야 했어’ 라고 아예 안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때의 내가 최선의 선택을 했었다고 생각하니 괜찮다. 이 방법은 꽤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10. 행동력이 뛰어나다- 라는 평을 많이 듣는다. 주로 내가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 듣는 소리인데, 누군가에게 마음을 못 전해서 답답한 느낌은 질색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편이라서 그렇다. 안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더 싫은 느낌은 없다. 친구들은 이걸 대단하다고 하는데, 별로 부러워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11. 단 걸 정말 좋아한다. 오늘만 해도 작은 하겐다즈 바만 3개 먹은 것 같다.

12. 아날로그 시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문자보다는 연필 꾹꾹 눌러 쓴 글이 더욱 멋지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그런 것을 대체할 낭만이 별로 없지 않나 싶다.

13. 에세이 쓰는 건 꽤 재미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공식 넣어서 푸는 문제 같은 건 정말 싫다. 그건 이해가 가거나 안 가거나 둘 중에 하나니까. 주로 난 후자라서 그럴지도. 다시 태어나도 이과는 정말 못할 것 같다.

14. 난 만족도가 낮은 사람이라서 아침 산책을 하다 맡아지는 이불 빨래 냄새에도 그날 하루 기분이 쭉 좋아질 수 있다.

15. 과거의 일들을 제 3인칭으로 상상할 때가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데 썩 맞는 말 같다.

16. 본업으로 작가는 못할지도.

17.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대답할 수 없다. 때마다 다르니까. 난 먹는 걸 좋아해서 생 굴이나 곱창 빼고는 다 먹는다. 지금 먹고 싶은 건 닭강정.

18. 우리 가족은 금요일 밤마다 모여서 영화를 본다. (안 볼 때도 있다) 난 주로 그때 먹을 간식을 사오는 역할이다.

19. 난 일본 작가가 쓴 책을 좋아한다. 일본 작가 특유의 잔잔하고 간결한 필체가 좋아서 자주 찾는 편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0. 마찬가지로 일본 영화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배우는 우에노 주리. 영화는 다양하게 보는 편인데, 유머코드가 확실한 영화도, 감정이 절절하게 흐르는 영화도, 시종일관 큰 변화 없이 잔잔한 영화도 좋다.

21. 뮤지컬을 좋아해서 그쪽으로 쓴 돈만 600불이 넘는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 싱가폴에서 한 오페라의 유령 중 팬텀 역 배우의 개인 공연에도 갔었다. 당시 뮤지컬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던 선생님 덕분에 캐스트와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22. 언젠가는 슬로우 댄스를 춰보고 싶다.

23. 편지를 쓰는 것도, 받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추천 곡: 잔나비- 뜨거운 여름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생각해보니까 예전에는 클래식 위주로 추천을 했었는데 요즘은 듣는 게 달라지다 보니까 다양하게 고려하게 된다. 음…)

 

여유가 있다는 것

사람에게 여유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마법 주문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여유가 있으면 생각에 제한이 없고, 행동에 언제든 브레이크를 걸 수 있거나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은 일에 치이거나 할 일이 많아 숨 고를 틈이 없을 때 여유가 없다고 하고 정말 할 일이 없을 정도로 무료하고 나른할 때 여유가 돈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여유의 정의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할 일이 없거나 내 일상을 가득히 채우던 것의 부재가 느껴질 때쯤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여유만은 여유라고 할 수 없다. 그동안 긴장감과 불안에 휩싸여 잔뜩 날이 선 마음이 서서히 풀어져야 여유다. 여유가 생긴다는 것은 한 발짝 물러서서 주위를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때, 그때가 진정으로 여유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야망차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도 여유롭다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 느즈막한 오후에 비빔 국수를 먹으면서 여유롭다, 라고 느꼈을뿐. 애초에 단순히 바쁘던 일상이 잠시 느슨해졌다고 해서 여유롭다는 건 어쩌면 궤변일지도 모른다. 그건 말 그대로 휴식일뿐, 마음을 집어삼키는 무언가가 잠시 물러났을뿐 그 무언가를 장악했다는 뜻은 아니니까. 단순히 할 일 없이 느긋하다고 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말로 바쁨이 없어졌음에 안도하여 여유가 생겼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여유가 진정 바쁠 때도 지속될 때다. 내가 돛단배라면 주위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노를 저을 수 있을 때, 그 안정감이 여유다.

난 조금씩 여유를 가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늘 난 (고3인 게 무색할 정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산책을 하며 진짜 아침 냄새가 뭔지 알았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갓 내놓은 이불의 냄새, 수영장에 물이 일렁일 때 나는 냄새, 주위에서 잔뜩 풍겨오는 풀내음. 왠지 여유가 생기면 평소에 눈에 익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령 그간 빨랫더미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화분이라던지, 해가 너울거릴 때 베갯잇에 잔뜩 고인 햇빛이라던지. 조개껍질로 만든 청빛 장식이 오후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흔들거리며 울리는 소리라던가, 일기장에 어지럽게 끄적여놓은 글이나 낙서도. 그리고 이런 한가로운 오후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마음가짐이나 모든 걸 필름 카메라로 담아낼 수 있는 시간. 진짜 여유는 이런 것들에 묻어나오는 것 같다. 더 이상 무서워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후회 없이 담아내는 능력.

사실 조금 속 편한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해야할 것이 없는 건 아니다. (라고 변명해 본다) 오히려 더욱 빨리 달려야 하지만 지난 몇 주는 정말 골 아픈 일을 겪었고 이제서야 잘 추스른 것이다. 이제 난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기다림에 있어 불안해 하지 않고, 손길 하나에 망설일 일 없다. 생각을 하면 바로 글로 옮겨 적을 수 있고, 가고자 하는 곳은, 발 닿는 곳이라면 언제든 주저않고 갈 수 있다. 사람이 언제나 괜찮기는 어렵지만 이런저런 일들 사이 이러한 재충전의 시간이 있어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제 갈 길 갈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보다 더 골 아프고 더욱 바쁜 일들이 가득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난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나마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까.

 

마음의 거리

사람을 알게 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유효기간이 있는 듯하다. 어딜 가든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하루가 되었든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만, 그 사이에 오가는 것은 무척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어떤 형식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정말 값진 행위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면, 자라온 환경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그 시간이 더욱 줄어들 수도 있지만, 시간과 관계 없이 일단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나누고 주위 사람들과의 벽을 허물어간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게 작은 조각들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마치 바닷가의 조개껍질 같아서, 작은 해변을 이루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가져오는 세상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덜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된다.

때로는 그 조각들이 다른 형태를 갖추어 나타날 때가 있다. 어느 관계는 그저 겉에서 맴도는 것과 같은, 얕은 관계지만 어쩔 때는 내가 모르는 사이 그것은 깊게 스며든다. 마음의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니, 그것이 다른 조각들보다 깊게 뿌리내려 마음 한 구석에 슬그머니 자리잡아도 난 결코 모를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람을 그만큼 깊게 알게 된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일뿐더러, 흔들리는 배를 붙잡아줄 닻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먹는다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이국적인 음식, 처음 듣는 취향의 음악이나 좋아한다던 감독의 영화라던지, 그런 것들을 알게 된다. 사소하지만 단순히 그 사람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되는 것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그 감정은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것을 보고 닻을 내릴 수도 있고, 옷 입는 취향을 보고 움찔하는 것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 그 사람은 어쩌면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단잠을 즐기고 간단한 요리는 뚝딱 만드는 재주를 가졌을지도 모르며, 특정 옷을 입는 것을 고집하며 옷장에 그러한 옷들이 나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까닭에 여러가지 일에 능할 수도 있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과목에 흥미를 보일 수도 있다. 난 이런 걸 알게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이 즐겨듣는 노래나 짙은 녹색 계열의 색깔을 못 본다는 것,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등 소소한 꿈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난 이러한 것들이 조금 신비로우면서도 무섭다고 생각한다. 사람 관계라는 것은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 않은 이상 결코 영원하다고 할 수 없다. 짧거나 길거나, 모두 지나가는 낙엽마냥 스쳐가는 인연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고, 더욱 애틋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끊는다는 건 마치 해변가에서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모래 틈새로 조개껍질이나 이따금 유리 조각 같은 흔적을 남겨둔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밀물이 나가고 나면 그곳에는 거대한 공허함이 남는다. 썰물을 쫓으려 드는 것도 의미 없다. 흐르는 물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으니 떠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난 이따금 그 가수가 새로 발표한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자주 가던 카페의 새 메뉴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애초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다분히 부질없지만, 그것이 관계를 맺고 끊음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썰물이 빠져나가면 발가락 끝을 간질이는 조개껍질의 존재를 느끼며 그곳에 잠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채 깨지 않은 단꿈에 머물러 쉬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꿈은 꿈이니, 결국은 깰 수밖에.

마음의 거리라는 시는 쓴지 족히 몇 달은 된 글인데, 개인을 위한 선물이었기에 딱히 이곳에 기재할 생각은 없었으나 (사실 까먹고 있기도 했다) 그 남은 조개껍질을 밀려오는 파도에 쓸어버리기 위해, 라고 할까- 그러고자 내 일기장 같은 이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다. 그 의미는 퇴색되었으나 기억만큼은 그곳에 있으니 지나가버린 파도를 추억하고자 꺼낼 수 있다. 썰물이 지나간 해변가에는 정적과 공백이 남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다른 파도가 찾아들 것이다.

Screen Shot 2017-07-17 at 5.12.00 pm.png

 

오늘의 추천 곡: 불꽃심장- 그래도 넌 나를 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