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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비올라

Korean October 3, 2019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들이 있다. 지나칠 때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 뒤돌아보면 다시는 비슷한 상황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게 문득 아득해지는, 그런 순간들. 그것들은 작은 디테일이 하나하나 기억 날 정도로 뚜렷하지도 않고 삶을 한순간 바꿔버릴 정도로 절절한 이벤트도 아니다. 그냥 삶 속 조그맣고 사소한 순간에 가끔 잠길 때가 있다.

난 지나간 순간들이 안타깝다.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 아직도 나른한 날 옛 순간들이 떠오르면 정신이 아찔해지곤 한다. 그렇다고 만약 실제로 타임머신이 있어 되돌아 가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사이의 시간을 다 없던 일로 해버릴 만큼 아쉬움이 크지도 않거니와 지금의 삶이 퍽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난 어제의 나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조금이나마 많은 것을 느끼고,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들에는 어떠한 애틋함 같은 것이 있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로도 더욱 그립고 사무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갈 수 없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그런 것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는 더욱 하고 싶어지는 (가령 어떤 버튼 위에 누르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다면 더더욱 누르고 싶어지는) 반항 심리 같은 마음일까도 몇 번 생각해봤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에 지금은 졸업한 고등학교 후배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우연찮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옛날 학교 오케스트라를 아직 할 시절 연주했던 곡이 몇 있었는데 가만 듣자하니 다시는 그때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너무 와닿았다. 나는 바이올린을 3년, 비올라를 7년, 악기 연주를 도합 10년을 했다. 실은 그리 오래 한 것치고는 특별히 잘하지도, 악기 자체에 애착도 없었다. 잘하고 싶었던 적은 있었어도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것은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크게 애절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자체에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아마 중학교 때 제일 처음으로 연주했던 오케스트라 곡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었을 텐데, 그게 기억에 아주 무겁게 남았다. 옆에서 생생히 들리는 현을 누르는 소리와 악보와 지휘자를 번갈아 보던 그 흐트러지지 않던 눈빛들이. 대회 연주에 참가하기 위해 오디션을 봐야 했는데 그걸 준비하려고 손목이 나가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연주했던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으리라. (애석하게도…)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재능의 한계를 더욱 실감했었다. 당시의 난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였고 어쩌면 우물 바닥이 살기엔 더 좋았다며 흘러가기를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론 연주하는 것이 싫었다는 게 아니다.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어 좋았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연습 전에 활에 송진을 바르며 오케스트라 탈주하고 싶다던가 리허설 영원히 불참하고 싶다던가 그런 소소한 불평을 너스레 떨던 순간이나 선생님이 늦은 틈을 타 옆 중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과 간식을 사먹으러 가던 길이 생생하다.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영화 속 음향 조절을 하듯 어느새 목소리는 한여름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달궈진 돌바닥을 타박타박 걷는 발소리 등에 묻히고 꿈을 걷고 있는 것마냥 붕 뜬 기분이 든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흐르면, 나는 이 순간을 내내 그리워하겠구나 — 하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나는 그렇더라고 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옛날에 살던 집에 와서 옷장 속 고이 잠들어 있는 비올라 케이스를 발견했다. 언제 그 속에서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

그 순간은 내게 분명 소중하고 애틋하다. 하지만 지나간 순간이기에 그러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그때의 난 지금과는 다른, 나름의 고민과 고뇌를 안고 있었고 마냥 존재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던 나이였다. 그러니 내가 더 순수했던 시절의 내가 그립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뇌의 무게만 다를 뿐 고된 건 같으니까. 그저 다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픈 것뿐이다. 그저 지금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로도 그리 반짝인다. 지금이라는 시간으로부터 눈 돌릴 곳이 필요해서, 떠나보내고 흘러보낸 시간이 조금 아쉬워서. 내일이면 매일 오는 행복에 잠식되어 잊혀질지도 모르지만 있다 없어진 것에는 빈 자리가 큰 법이다. 그것이 설령 시간이고 기억 속 한 단편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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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쓰며

Korean April 3, 2019

이 이야기는 책에 싣지 못할, 책 집필 과정의 뒷이야기다. 첫 작품인 봄날의 로즈와 달리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출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봄날의 로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간해야지, 라며 쓸 때도 한 달 정도 잡고 매일 5-6시간을 글을 쓰며 1차 교정이 끝나자마자 투고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계획을 진행했었는데, 내 온 마음을 담아서 는 그러기가 조금 어려웠다. 일단 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애초에 봄날의 로즈는 순도 100% 판타지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픽션. 모티브야 중학교 때 연주했던 오케스트라에서 받았다고는 해도 로즈나 이리라는 캐릭터 구상부터 마녀 사냥이라는 소재 모두 지어낸 것이었다. (애초에 배경이 18세기 프랑스이니 개인적인 경험이 들어가긴 조금 어려운 감도 있지만) 내 온 마음을 담아서는 조금 다르다. 그건 어쩌면 회고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 경험담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아, 물론 기억을 잃는 병이라던지 연인이 죽었다던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소재가 내 경험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 묘사라던지 소설 중 일부의 상황을 나에게서 비춘 것이라는 거다.

요즘 글을 왜 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글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도. 10년 동안 밥 먹 듯이 하던 일이라 딱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요즘에서야 그 해답을 조금 얻은 것 같다. 난 그간 공모전이나 글짓기 대회 같은 곳에 글을 내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나만을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내가 내 글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굳이 인정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작가로서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작가는 읽히기 위한 글을 써야하는데, 이걸 보면 난 소설가로서는 조금 글러먹은 듯 하다. 아마 본업으로 소설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지. 그래서 나는 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출간하는 게 약간 두렵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야 어느 정도로 작품 속 소재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을 표현한다지만 나는 그것이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더더욱 꺼려했는지도 모른다. 첫 2부는 캐릭터 구상에 중점을 두었지만 감정 묘사에 공을 들인 3부부터는 쓰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필한 2017에서 2018년 한 해는 내게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다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마음과 밤잠 들지 않는 새의 생각을 모두 적었기에 이 작품은 나를 그대로 발가벗긴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작품에는 오롯이 내 마음을 담았다.

그러니까,는 환이고 성경이다. 나는 환처럼 애달피 기다린 적이 있고, 성경처럼 버거운 마음에 힘들어한 적이 있다. 환의 우유부단한 성경도 내 것이고, 생각이 많다못해 넘치는 성경도 내 모습의 일면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는 기억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알게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 윤환과 천성경은 내가 사랑할 때 나타나는 페르소나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만큼은 주인공 구상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구상은 봄날의 로즈 를 쓸 때 조금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내 소설 속 페르소나에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일면도 있지만 내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면도 있다. 아득한 옛날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몇 년이고 곱씹기만 하는 환의 무른 면이 내겐 그렇다. 안 좋게 말하자면 미련 넘치는 모습이겠지. 그런 면에서 환은 내 모습을 그대로 쪼개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만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정이 가는 것은 조연들이다. 미치코가 나오는 부분들을 쓸 때가 제일 재밌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러시아 여행에 대해 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더 쓰고 싶었는데, 주인공들은 환과 성경이니까… 그냥 과거가 화려한 묘령의 여인으로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언젠가 다른 작품을 쓰게 된다면 조연으로 꼭 출연시키고 싶다. 게다가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 속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연성화다. 뭔가 능글맞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책임지는 타입. 성경이 그를 내칠 때 나도 안타까워 죽을 것만 같았었지. 우리 성화 파이팅. 소희와 희수 이모는 성경이라는 인물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생각해둔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정작 이 둘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데 (나와도 소희가 대학에 다닌다는 것과 럭비 선수를 남자친구로 두었다는 것 정도?) 소설에 설명하지 않은 설정은 이모도 원래 오슬로에서 유학을 와서 그대로 노르웨이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그녀를 따라 노르웨이에 요양을 온 것. 언어 관련 일을 한다고 생각해두었다. 요가를 즐긴다는 설정이 있었어서 성경과 종종 한다는 뒷이야기도 생각만 해두었다… 안경을 쓰고 서글한 인상이 인상적인, 누군가를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아껴줄 수 있는, 절대적인 다정함으로 누군가를 감싸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성화가 그녀의 병을 연구하듯 체계와 물질로 성경을 돌본다면 희수는 정서적으로 성경을 보살피며,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이렇듯 주인공과 조연들이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경과 환, 그리고 희수는 실존하는 인물이 모티브가 된 케이스다. (주로 생각해둔 이미지로 머릿속에서 글을 그리는 편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머릿속에서 영화마냥 이야기가 플레이되어야 글을 쓰는 게 가능하다. 참고로 봄날의 로즈 중 이리의 모티브가 된 사람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다. 사랑합니다 캡틴.)  그리고 희수의 모티브는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즉, 지인이라는 말이다. 주위에 다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리 좋은 것이다.

편지를 소재로 쓴 것은 그냥 내가 굉장히 아날로그적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21세기니 누가 이틀 사흘씩이나 편지를 기다릴까 싶으면서도, 뭔가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을 사용해 대화를 나누는 건 정성이 덜하다는 느낌? 그러니 편지를 택한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보다 낭만적인 게 있을까? 내 낭만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담긴 펜촉에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꽤나 악필이고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는 정도. 그래도 꽤나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는 편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의 마음은 글에 고스란히 담긴다. 글을 쓰며 하나하나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글에는 쓰는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온다. 난 글에서 느껴지는 사랑이 좋다. 그리고 그런 이유도 있지만, 내가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마무리가 좋지 못한 사람이라서다. 난 순발력도, 말발도 그닥 좋지 않아서 중요한 순간이 올 때는 항상 해야되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나중에 가서야 그 말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하고 자주 후회하는 편이다. 나는 제때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옮긴다. 그렇게나마 글로 마음을 담으면 전하지 못한 억울함과 서러움이 그렇게 위로가 된다. 그게 습관이 되어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 책은 내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오랜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는 그 친구를 내 온 마음을 담아 아낀다. 세상에서 동떨어졌었던 나를 찾아주었던, 늘 좋은 기억만 있지만 않았지만 그래도 몹시 애틋한, 일기장 같은 친구다. 그 친구가 늘 괜찮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나는 그 시간을 잊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어 쓴 글이다. 이걸로 이제 그간 결말이 없던 내 옛날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사람의 인생이 언제나 소설 같지는 않아 꼭 극적인 어떠한 순간으로 여운을 남기며 끝나지는 않는다. 얼마 전까지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색깔이 터진 듯한 멋진 노을을 보거나 선선한 어느 여름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편할 때는, 내 인생이 소설이라면 이쯤에서 마무리되어도 좋겠다고. 하지만 그건 소설로서 좋은 거지, 삶이 좋은 건 아니다. 소설이 아니니 하루하루 사는 게 버티는 것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죽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삶 속 마음에 드는 순간을 골라 결말을 맺을 수 없다. 그래도 이제는 기억이 두렵지 않아서, 어떤 기억은 기꺼이 잊고, 어떤 것들은 마음껏 기억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잊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루면서 시간에 잠식되어 닳을 수는 있다. 결국,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그게 죽음이나 망각일지라도.

이 후기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출간을 이틀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출판사 투고부터 출간까지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조금 더 개인적인 근황을 적어보자면, 나는 대학교 1학년 기말을 준비하는 중이다. 지금은 그리스 신화 속 등장하는 카타바시스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 중이다. (진짜 너무 어려워서 눈물난다…!) 시험이 끝나고는 한동안 ‘드디어 이 소설을 출간했구나’ 하는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다 초가을쯤 새로운 소설을 기획할 것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쓰기 시작할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빠르게 간다. 앞으로도 더욱 빨라지겠지.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러니 나는 성경과 환처럼, 앞으로도 매일매일 힘을 내서 행복해질 것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생각한다.

 

내 사진의 초점

Korean February 6, 2019

문득 작가 프로필 사진을 고르기 위해서 갤러리를 훑는 도중 느낀 게 있다면, 어떤 사진은 내 모습이 잘 나와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있고, 잘 나오지 않았는데 퍽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다. 사실 이것을 오늘 처음 와닿은 건 아닌 게 11학년 때 당시 절친이 찍어준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사진첩에 남겨둘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은 학교 바자회 같은 행사였어서 하루종일 동아리 부스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는데, 몇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몰골이 그렇게 엉망진창일 수가 없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화장은 거의 지워지고… 여하튼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 엉망인 상태로 학교 육상부 트랙에서 노을을 등지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사진첩을 정리할 때 그 사진을 계속 지울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돌아가 봐도, 그 사진은 남겨두었다. 꽤나 못 나온 사진인데도 난 잊을만하면 계속 그 사진으로 돌아가 그때의 시간을 계속 곱씹곤 했다.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결국 사진의 퀄리티와 선호도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어렵사리 깨달았다. 그렇게 느낀 사진은 단 둘이다. 나머지 하나는 고등학교 때 서울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전시회를 보러갔을 때 전시장 앞에서 엄마가 찍어준 사진이다. 그날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는 지금도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때 그 동네 특유의 풀냄새가 좋아서, 7월 중순의 햇볕이 좋아서였는지도 몰랐다. 숨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보이는 풀꽃이 좋아서, 그늘 아래 한 숨 돌리는 게 좋아서. 전시장에는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건 천장의 수조 아래 누워서 물의 무늬를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었고 그대로 물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난 어쩐지 손을 뻗어서 물을 만져보고 싶었다. 이대로 가라앉아 눈을 감아도 마냥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기억에 무겁게 남았다. 이후에 모르는 동네의 언덕을 걷고 생소한 책방을 발견하게 되는 그 하루가 일상에 물결을 일었던 것이다. 기억이 찾아드는 날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고 그때 생각했다.

어떨 때는 기억에 남기고 싶어도 당최 남겨지질 않았다. 사진이란 당시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것인데, 사진을 몇 장이고 찍어도 그날의 기억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내가 그날을 기억하고 싶어도 단순히 사진을 찍은 그 순간만 기억하고 그날의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을 하고 싶어서 기록을 남긴 것이 오히려 그 순간만 잔뜩 부각시켜버린 것이다. 어쩌면 중요했을지도 다른 모르는 요소들은 잠식시킨 채. 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고 또 찍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 사진첩에는 언제나 사진이 많다. 기억하는 순간들은 많은데, 마음에 남는 순간은 손에 꼽힌다. 요컨대, 기억하고 싶은 것과 기억에 남는 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난 어릴 적 엄마가 만든 케이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맛은 어땠는지 기억하고 싶어하지만 문득 생각나는 건 케이크를 만드는 엄마의 모습이었으니까.

사진 한 장 없어도 계속 기억에 남는 것들도 있다. 나는 유독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쓴다. 봄날의 로즈에서도 로즈와 쥬드는 기억을 가지고 내기를 했고 내 온 마음을 담아서에서는 기억을 잊고 싶은 남자와 기억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정서적 교류에 대한 것이니까. 나는 그렇게 계속 머무는 기억에 대해 쓰고 싶었다. 사진 하나 없어도 기억에 영화마냥 재생될 그런 빛바래지 않는 기억 말이다. 나한테는 어떠한 기억이 중요했고 그 기억을 지키려면 어떤 것도 할 수 있었으니까, 가 내 얼마 전까지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이 그렇게 많이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생각하는 것처럼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만두었다. 어차피 머물 기억이라면 굳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굳이 못 잊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그 기억에게 묻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난 그날 사진을 남겨두지 않아서 내심 안도했다. 기록의 부재에 기꺼이, 몇 번이고 마음을 놓았다.

눈사람

Korean June 24, 2018

눈사람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만 오면 그녀는 그때를 생각했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 이제는 까마득히 남은 기억뿐인데도, 그녀는 그 조각들을 짚으면 그때를 생각했다. 이제는 그 어느 겨울도 그때와 같지 않다. 지금은 그저 메마른 황무지에 눈덩이가 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겨울은 달랐다. 고즈넉한 12월의 설원 저편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 치는 것을 생각했다. 귓가를 찌르는 정적 사이를 얄팍하게 파고드는 그녀의 목소리를. 그가 어떻게 돌아보았더라?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던가, 아니면 그저 설원 저편에서 그녀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던가. 그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 것도, 아무도 없는 설원을 그리 사무치게도 보았던 그의 시선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나. 이제는 모든 것이 부질없었음에도 그녀는 아스라이 남은 눈꽃 하나하나를 되짚었다. 발이 푹푹 담기는 눈에도 자그마한 불꽃이 있었다. 눈 속에 숨은 그 온기를 찾듯 그들은 눈을 두 손으로 끌어모았다. 말없이 눈을 빚는 그 손은 장갑을 끼지 않아 빨갛게 얼어있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눈사람의 몸통을 토닥이는 그는 역시나 발개진 콧잔등을 찡그렸었다. 언 손을 이따금 주머니 속에 찔러넣으며 그는 한사코 자신은 괜찮다고 그녀를 달랬었다. 그녀는 그 거짓말에 까무룩 속아 고개를 끄덕였더랬지. 그러니 그의 시선이 자꾸 그녀의 궤도를 벗어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시선의 꽁무니만 계속 쫓았다. 눈사람이 있던 자리에 모닥불을 피워, 그 자리가 까맣게 그을릴 때까지, 그 시선의 끝에만 다다를 수 있었다.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도, 역에서 작별 인사를 나눌 때도, 그 시선은 언제나 너무 멀리 머물러 있었다. 세월이 훨 흐르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 찾아들 적엔 그녀는 그을음마냥 그가 마음에 까맣게 번지면 그저 그 눈길을 생각했다. 그녀에 머물지 않던 그것을.

비가 오는 길

Korean June 16, 2018

그의 말에는 어떠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를 생각하곤 했다. 단순히 비가 오는 날에만 그와 대화를 했기에 그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어투에서는 마음이 주륵주륵 흐르고 있어, 가랑비가 오던, 소나기가 오던 그를 연상케 하는지도 모르겠다. 빗소리 사이에 숨죽이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노래 부르듯 잔잔한 그 목소리가 계속 마음에 울렸다. 게다가 기억이라는 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개체만 있다면 곧이어 그 시간이 따르는 것일지도. 그녀는 그랬다. 비가 오면 그만이 아니라 그를 향하던 그녀의 눈길까지 생각이 났다. 누구를 봐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그를 보는 눈길이. 어떤 방향이 있는 것도, 특정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눈길이었다. 그의 부재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그 눈길을 그리는마냥 떠올렸다. 그렇다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 그의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듯, 그 사무치는 빈 공간에 그의 생각을 더욱 꾹꾹 눌러 담곤 했다.

 

편지를 쓰는 마음 같은 것

Korean December 3, 2017

연서 끄트머리에 엉성한 손길로 묶인 민들레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살짝 접힌 모서리부터, 종이의 부드러운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면 미약하게나마 꽃 향기가 났다. 한참 전에 지나버린 그 시간의 기억이 솔솔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 봄이 묻어나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끝내 지날 기미가 안 보이는 아득한 겨울 끝에 서서 연서를 받았지만 마음만은 그 너머에 있었다. 햇볕이 녹아내린 듯한 봉투의 노란 종이의 한 구석에는, 비스듬히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그 보잘 것 없는 이름을 꾹꾹, 한 자씩 눌러 썼을 손끝이 문득 떠올랐다. 그 고운 손결을 탔을 글자가 얼마나 어여쁜지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두 손 꼭 쥐고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서투른 손길로 살짝 독특한 취향의 우표를 붙이고 오래 전에 책장 속에 고이 말리었던 민들레로 입구를 봉했을 그 애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 마음이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사실 연서가 도착한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해가 지고 달이 드리웠는데도, 또 다른 하루가 꼬박 지나갈지도 모르는데도 그 편지를 손에 꼭 쥐고 발만 동동 굴렀었다. 행여나 그 마음이 닳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꽃잎을 보면서.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썼을 것이다. 나의 얼굴, 눈길, 손끝 하나하나 떠올리며 글을 적었을 것이고, 우편함에 도착한 이것을 받아들 나의 표정을 떠올리며 편지를 부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사실 편지의 내용보다는 나를 생각해주어, 그 울렁이는 마음을 이 연서에 담은 것을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연서를 열기 전, 그 마음을 날 것 그대로 느낄 때까지.

(단편) 종이로 접은 달

Korean August 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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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은 창문에 입김을 불어 비춰진 달을 따라 그리고는 조금씩 지워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의 버스 안이라던가, 느즈막한 주말 저녁에 간 카페에서라던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던 (그것이 제인을 화나게 했다)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달을 찾곤 하던 그의 표정이 떠올랐다. 짙은 밤하늘의 배경에 손톱 끄트머리마냥 조그마한 달을 찾으면 순간 빛나는 그의 눈빛과, 그것을 이내 그윽하게 바라보던 우수에 찬 그의 표정 하나하나. 그리고 어김없이 유리에 입김을 후, 불어 달 모양을 그리곤 했다. 최대한 정교하고, 예쁘게 그리려는 듯 집중하던 그의 손길을 따라 제인도 책상 위에 달을 그려보았다. 그가 그린 달은 깔끔하고, 예뻤다. 제인은 그것을 따라할 수 없었다. 굳이 어여쁘게 그린 달을 이후 매정하게 지워버리는 그의 손가락도, 제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러는 거야?” 언젠가 제인이 물었다. “이군 넌 참 특이한 것 같아.”

“전혀…” 이군은 그럴 때마다 멋적게 웃었다. 웃을 때마다 길게 늘어난 초승달처럼 입가에 파이는 보조개를 보기 위해서 한 말이라도 전혀 과언은 아니었다. “그럼 왠지 진짜가 아닌 것 같잖아? 달이 없는 곳은 진짜가 아니고, 비현실이라면, 모두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말 알 수 없는 말뿐이야,” 제인이 투덜거렸다.

그렇게 대꾸했지만, 제인은 언제나 불안했다. 이군이 언제나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의 오랜 친구인만큼, 그를 아주 오래 봐왔기에 더더욱. 잔업이 많아 만나기로 한 카페에 서류라도 들고 오는 날이면 그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그의 눈은 언제나 공허했고, 늘 지쳐보였으며 손길조차 힘이 없었다. 밥을 먹을 때나, 책을 읽을 때도, 그는 이따금 고개를 들어 줄곧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리곤 제인과 눈이 마주치면 그 바보 같은 보조개 보이는 웃음을 변명 삼아 내비치고는 다시 몰두하는마냥 시선을 돌리곤 했다. 이군이 언제부터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겨우겨우 기억의 한계까지 다다를 정도로 생각을 해본다면 아마 제일 처음으로 그것을 목격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았다. 보던 책장 너머,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공상하며 창문에 달을 그리고 있던 그의 모습이 계속 단꿈마냥 아른거렸다.

사실 이군의 고민이 뭐였는지도 제인은 잘 몰랐다. 이군은 늘 제인이 자신이 뭔갈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런 제인마저도 이군이 어느 정도 날을 세우고 있다는 것, 또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세계를 조금 보여줄 테니 그 이상은 넘어오지마!’ 라는 경고판처럼. 그는 이따금 눈치없이 회식에 끼어서 여직원한테 추근덕대며 분위기를 팍 망쳐놓는 상사에 대해서 불평을 하기도 했고 그날 새로 갔던 레스토랑의 리조또가 가격에 비해 맛이 없었다는둥 사사로운 불만을 늘어놓기도 했다. 키우던 고양이가 자기 손을 물었다, 아끼는 신발의 깔창이 까질 것 같아 불안하다- 정작 제인이 진짜 듣고 싶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어딘지 아파보였다. 입술은 가느다랗게 미소를 지었지만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리고 있었으니. 이런 자잘한 것들이라도 말해줄 테니 그걸로 만족이라도 하라는 걸까, 제인은 언제나 생각했다. 그게 꼬인 걸 알면서도 제인이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라도 꺼내려 들면 그런 말들로 바로 화제를 바꿔버리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군이 감기에 걸려서 며칠 간 집에서 못 나올 때부터였나, 제인은 그때부터 종이로 달을 접기 시작했다. 달이 그의 유일한 탈출구라면, 하늘에 떠 있는, 잡을 수도 없는 달 말고, 손에 잔뜩 잡힐 수 있는 비상구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군은 분명 실없이 웃으며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종이의 각진 부분을 반듯하게 접으며 제인은 언제나 이군의 허탈한 웃음을 생각했다. 다분히 부질없는 짓일지도 몰랐다.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의 직장인이 매일 같이 찾아와 색종이를 사갈 때의 문방구 주인이 짓던 표정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왠지 볼이 붉게 물드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내킬 땐 보름달을 접기도 했고, 김 나는 갓 만든 오므라이스 같이 어정쩡한 모양의 달도 접었지만 역시 제일 많이 접는 것은 이군이 제일 좋아하는 초승달이었다. 그녀가 접은 종이 달 중에서는 비뚤거리는, 손때만 잔뜩 탄 못난 달도 있었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끝으로 반듯하고 단아한, 곡선이 아름다운 달도 있었다. 접을 때만큼은 제인 본인도 아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군을 제외한 생각을. 그녀에게만큼은 털어놔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군이 더 이상 웃을 때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더욱 컸다. 서른 몇 번째 종이 달을 접을 땐 제인은 완성된 종이 달을 들어 창가 가까이 들어보았다. 진짜 달이 오히려 가짜 같을 정도로, 조그맣게 보였다. 멀리 있는 신기루마냥 조그맣고 조용하게. 그에 비해 그녀가 접은 달은 크지막했다. 평범한 색종이로 접은 것인데도 그녀의 손바닥만했다. 제인은 그 종이 달이 이군에게 손에 잡히고, 닿을 수 있고, 멀지 않은 비상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몇 번의 주말이 지났다. 이군은 그 사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늘어놓았다. 자신의 고양이가 나가서 나뭇가지를 주워왔다던지, 새로 시도해본 허브 치즈가 그렇게 모닝롤이랑 잘 어울린다던지. 언제고 진짜 내비추고 싶은 마음은 아닌 것들, 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는 끝내 들어주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시선은 그의 두 눈에 고정하여, 경청하듯.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시간이 나면 고양이를 보러가겠다, 그가 극찬하던 치즈를 한 번 맛보겠다, 하는 무의미한 리액션. 찰리 채플린이 연기하던 희극 같았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자지러지게 웃고 몸 개그를 선보이는 공연의 주연이 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미세하게 찌푸린 이군의 미간을 지켜보는 것이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될 텐데, 라는 생각만이 계속 맴돌았다. 종이 달이 오십 개가 넘어 세는 것도 힘들어질 때의 어느 주말, 제인은 휴가를 냈다는 이군의 전화를 받았다.

“휴가 냈어,” 연결음이 멈추자마자 다짜고짜 내뱉은 이군의 말에 제인은 다시 한 번 물어야 했다. “휴가 냈다고.”

“어…” 제인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그때도 그녀는 종이 달을 접고 있었다. 언제나 무리하던 이군에게 숨 고를 틈이 생겼으니 다행인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잘됐네.”

“완전 찍혔겠지. 안 그래도 눈치 잔뜩 주더라. 프로젝트가 몇 갠지 뭔지… 제일 바쁜 거 내가 마무리 하고 왔는데 무슨,” 이군이 말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늘어놓으며 정적을 채웠다.

“뭐할 셈이야, 이제부터?” 제인이 말했다. 정말 하고 싶은 거나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휴가를 쓰겠다고 다짐하던 그가 왜 아무런 기별 없이 무작정 휴가를 냈는지 살짝 의아했다. “계획은 있어?”

정적이 흘렀다. 이군의 나지막한 숨소리는 계속 들렸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이군?” 그녀가 되물었다.

“으음, 잘 모르겠는걸. 일주일이니까 느긋하게 하고 싶었던 거라던지…” 이군이 말했다. 그는 살짝 기운이 없는 듯 했다. 이조차도 그에겐 어려운 질문이었던 걸까.

“너가 하고 싶었던 게 뭔데?” 제인이 물었다. 무심코 물었던 것이었지만 아차 싶었다.

“몰라,” 이군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대책 없다, 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이군과의 마지막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이군은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친구들이 가끔씩 보내주는 여행 사진에 좋겠다- 라는 단조로운 반응만 보일뿐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인은 종종 그를 미술관이나 수족관, 바다 등 다양한 곳에 끌고 갔었다. 집에나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재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그의 삶에 색깔을 입혀주고 싶었던 취지였지만 이군은 어딜 가도 같은 표정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어쩐지 서글픈 눈빛.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의 표정은 오히려 그 마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는 듯 단념한 표정이었다. 미술관의 그림을 보는 쳐진 그의 두 눈은 죽은 생선의 눈알마냥 초점이 없었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도 붓감과 페인트 사용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그의 엉뚱한 대답에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할 수 없었다. 기분 전환이나 시켜주자고 했었는데 어쩐지 돌아오면 그녀가 더욱 지쳐 있곤 했다. 그러니 차라리 다행인 것일지도 몰랐다. 이군은 적어도 휴가를 낼 정도로 본인의 한계를 알았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자각할 정도로 현실에 붙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었다. 제인은 상자를 거의 채운 종이 달들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몇 번째로 접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종이 달의 뾰족한 모서리가 그녀의 손가락을 찔렀다. 피가 나진 않았지만 제법 따끔해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언젠가 이군에게 그녀가 접은 모든 종이 달들을 선물하게 된다면 꼭 말해주자고도 곱씹었다. 그리고 그 뾰족한 모서리도, 이군이 휴가를 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모두 그녀의 안일함이었다.

사흘, 나흘이 지나도 이군에게는 연락 한 통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시절까지, 그리고 직장인인 지금까지도 이틀 이상 연락이 끊긴 적은 없었기에 불안했다. 사흘까지는 제인조차도 일이 바빠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기에 다른 곳에 마음을 둘 겨를이 없었지만 그 이후로 시간이 너울너울 넘어가자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가 스쳤다. 나흘이 딱 지난 그날, 제인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빈 검은 공간이 신경쓰여 밥이 곧잘 넘어가지 않았다. 울리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핸드폰을 보며 제인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췄다. 이군은 아이가 아니다. 연락 없이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라며. 이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연결음 뒤에는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냉랭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뭔가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필사적으로 종이 달을 꾸역꾸역 접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도 있었다. 은연 중에 탈출구를 잔뜩 만들어 놓으면, 다 접을 때쯤에는 이군이 마법처럼 뿅- 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제서야 뭔가 와닿았다. 이군은 좀처럼 그녀에게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소한 것들을 들먹이며 그녀가 그 근원지를 파고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러니 이 휴가도 핑계일지도 몰랐다. 왠지 이군이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군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군이 사라진지 5일 정도가 흐른 날, 제인은 이군이 가볼만한 곳을 들렀다. 카페. 그들이 앉아 일상의 온갖 잡생각과 고민 (물론 제인 쪽의 일방적인 하소연이었지만)을 털어놓던 곳. 제인은 그곳에 앉아 창문에 입김을 호, 불어 초승달을 그렸다. 입김이 뿌옇게 서린 유리에 손가락을 꾹 눌러 달 모양을 내자 그 틈새로 밤의 불빛이 새어들었다. 그 청량한 틈새로 시선을 옮기자 진짜 달이 보였다. 매캐한 매연 연기로 휩싸인 아스팔트 정원 위에, 다른 세계에 있는마냥 떠 있는 초승달. 이군은 줄곧 이것을 봐 왔던 것이다. 비좁은 통로 끝의 도피처. 이군은 바쁜 일상 속에 통로를 끼워넣었다. 그의 도피처는 어디인지, 제인도 잘 몰랐다. 그것이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목적지는 동네 공원 언덕이었다. 제인과 만나지 못할 때 이군은 언제나 이곳을 찾았다고 했었다. 산책로를 쭉 지나 길을 타고 올라가면 큰 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만 가로등 같은 게 전혀 없어 오솔길을 걷는 내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애를 먹었다. 이군은 이 어두운 길을 언제나 말없이 오갔던가, 싶어서 기분이 어쩐지 씁쓸해졌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동네는 뭔가 비좁았다. 좁은 틀에 갇혀 있는 불빛과 각진 건물 안에 통조림마냥 담겨 있는 사람들. 그 위에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달. 그 달과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제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군이 이곳에서 뭘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6일째 되는 날, 다음으로 찾은 곳은 도서관이었다. 이군은 전혀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었기에 앉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호했다. 애초에 행동반경이 직장이랑 집뿐이어서, 그 사이를 배회하던 이군을 밖으로 끌고 나온 것도 제인 본인이었다. 이군은 도서관에 들어서면 풍기는 낡은 종이의 냄새가 좋다고 했었다. 손끝을 스치는 종이의 감촉도, 사람들의 손을 여럿 거친 책장도, 작가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글도. 무엇보다 무언갈 읽으면 제 삼자, 즉 단순히 구경꾼이 되는 일이 좋다고 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제인이 손끝으로 책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책을 읽어서 몰입된다는 건, 그 속에서만큼은 모든 책임도, 의무도 없으니까. 그 말을 할 때의 이군 표정이 언뜻 뇌리를 스쳤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입만큼은 애써 웃고 있던 그 안쓰러운 얼굴을. 도서관을 뒤로 하고 다음 장소를 찾을 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군이 찾을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군은 무기력했고, 힘들어 했다. 그런 이군이 도피처 삼아 찾을만한 곳이 없었다. 그제서야 이군이 그동안 알게 모르게 흘렸던 신호들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때 신호등마냥 그녀에게 닿았다면 좋았을 텐데. 빨간 빛, 푸른 빛, 바로바로 알 수 있도록.

이군이 말했던 휴가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녀가 이군을 끌고 갔던 곳 이곳저곳을 들렀지만 이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녀 멋대로 그를 데리고 갔던 곳들이라 이군이 그곳에 갔을 리 없었다. 그래서 제인은 이군의 흔적을 쫓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날 저녁까지 연락이 없으면 신고라도 할 셈이었다. 문자라도 한 통 주지, 라는 원망에 찬 생각도 이제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제인은 다시 이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없는 연결음이 계속되었다. 일주일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이번에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쯤되면 잘 알 텐데도 제인은 언제나 연결음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 ‘혹시나’ 라는 것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언제나 더디게 간다고 했던가, 나름 잡생각을 치우며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제인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눈길 닿는 곳에 시계를 두며, 그녀는 계속 기다렸다. 밀린 드라마를 보는 것도, 평소에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먹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잡생각을 치울 수 있는 순간은 종이 달을 접을 때였다. 접힌 선을 따라 또 접고, 펴고 손끝으로 선을 타는 시간만큼은 빠르게 흘렀다. 마치 그녀의 온 시간과 생각을 종이 달이 먹는 것마냥.

그래서 해가 너울너울 질 무렵에 종이 달이 든 상자를 들고 이군의 집으로 향했다. 왜 그 상자를 가지고 갔는지는 제인도 몰랐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끝은 감정으로 잔뜩 얼룩져 있었고, 마음 한 줌 마저 너덜너덜해진 그녀는 상자를 꼭 쥐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그녀의 볼을 스쳤고 상자를 꼭 붙든 그녀의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려왔다. 이군이 없어졌다. 업무를 재촉하는 상사도, 한참 밀린 일거리도 짜증이 나는데 더욱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녀의 무력함이었다. 그간 이군의 상태를 알고도 눈치 못 챈 척, 모르는 척 까무룩 넘어간 자신이 한심했다. 이군은 그녀에게 선을 긋고 있었지만 사실 먼저 외면해 버린 것은 그녀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군이 불편해 할 것 같으니까- 라는 이유 하에 안심하며 눈 감고 귀 닫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이군의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발바닥이 굳게 얼어버린 땅에 닫는 그 모든 순간이 버겁게 느껴지고 이군의 부재가 잔잔히 묻어나오는 그의 거처의 모든 것-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현관, 소리 없는 공간- 그런 것들이 절절하게 와 닿을까봐 두려웠다. 종이 달은 그녀의 품 안에서 흔들렸다.

이군의 집에 도착할 때쯤 해는 거의 넘어가고 어둠이 드리워질 시간이었다. 이군의 집 앞에서 제인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의 현관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지만 이군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휴일에 그녀가 무작정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때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불평을 하곤 했다. 그러고선 비밀번호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그게 이군이었다.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데 초인종으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 뒤를 이을 정적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 막막함에 제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가, 제인이 생각했다. 매 순간 네가 느꼈을 기분. 그래도 그곳에 마냥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단순 가랑비일줄 알았던 것이, 무섭게 내리치는 소나기였기 때문이다. 행여나 상자가 젖을까 제인은 그것을 꼭 품에 끌어안고 괴로운 마음을 뒤로한 채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섰다. 꺼진 불과 아무런 손길을 타지 않은 가구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알고는 있었다. 다만 확인 당하고 싶지 않았을뿐. 그제서야 상자를 손에서 놓았다. 그녀의 마음과 함께 상자는 손에서 떨어졌다. 수많은 종이 달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얀 달들이 바닥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번개가 쳤는지 불 한 줌 없는 거실에는 일순 섬광이 스쳤다. 이어서 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어찌나 컸는지 귀에서 메아리마냥 울렸다. 창문이 열려 있었던 모양인지 바닥에 있던 종이 달들이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춤을 췄다. 마치 토네이도가 들이닥친 것처럼, 달에 달이, 하나하나 이어서 공중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희고 맑은 달이, 단순히 이군이 그린 달이 아닌, 손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이, 어여쁘고 흰 종이 달은 밤을 타고 너울거렸다. 그것보다 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에 비춘 어떤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집에 불빛 하나 없어 몰랐지만 번개가 치자 어둠에 시야가 점차 익숙해졌다. 약간 지치고 서글픈 눈매의, 힘없는 이군.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종이 달은 춤추고 있었으나 시간은 멈춘 것 같았다. 목소리도, 눈빛도 그곳엔 없었다. 이군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공중에서 춤을 추다 피고 진 꽃잎처럼 바닥에 떨어진 종이 달 하나를 주웠다. 그는 항상 종이 달을 그린 손끝으로 종이 달을, 그 흰 곡선을 어루만졌다. 그는 오랫동안 종이 달을 쳐다보았다. 종이 달 하나하나를 관찰하듯, 그의 눈빛은 초승달의 곡선을 타고 움직였다. 이윽고 이군은 종이 달을 들어올리더니, 아무 말 못하는 제인에게 건넸다.

“역시 이걸로 힘낼 수 있겠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초승달마냥 아름다운, 깊게 패인 보조개가 쏙 들어간 그 웃음으로.

이군은 돌아왔다. 제인은 끝내 그에게 묻지 못했지만, 이군이 괜찮아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단편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사실 그마저도 오늘 사진을 찍으러 가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 옆에 조그맣게 떠 있는 초승달이 예뻐서, 순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을 사진으로 포착한 것이다. ‘재인’ 이라는 이름은 내 본명이 될뻔한 이름이다. 엄마는 나를 ‘재인’이나 ‘선우’로 짓고 싶으셨다는데, 전혀 다른 (흔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군은 말 그대로 이군. 정말… 성의없는 이름이다. 단편 소설을 쓰는데 굳이 거창한 이름을 짓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이 이야기에는 이름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 여차하면 A양, B군이라고 지어버릴 정도. 약간 뉴스에 나올 법한 이름 같은? 다만 알파벳이랑 한글을 치기엔 왔다 갔다 하기 힘드니까 이군이라고 지어버린 것이다.

이 단편은 어느 정도 (둥글게 보자면) 경험담이다. 물론 나는 종이 달을 접지 못하고 직장인도 아니지만,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앓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 친구는 이따금 사라져 가끔씩 모습을 보인다는 것 정도는 실제로 있는 일이다. 마침 그 친구와 달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기에, 사진을 찍으면서, 달을 향해 손을 뻗어 보면서 그 친구 생각이 문득 문득 났을뿐. 그 친구, 일명 이군은 밤과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우리의 대화가 주로 밤에 이뤄져서인지는 모르겠다만 딱 봐도 밤을 거닐고 있을 것 같은 사람. 눈길, 목소리 모두 밤과 어울리는 사람이다. 애석하게도 난 그에게 종이 달을 접어주거나 (너무 멀리 살기에) 탈출구를 만들어주진 못하나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조금은 느슨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글이다. 난 이군을 매우 좋아한다. 그는 꽤나 좋은 친구고, 힘든 여정의 동반자다. 항상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친구다. 역시 이번에는 꼭.

오늘의 추천 곡은 콜드플레이의 The Scientist.

 

마음의 거리

Korean July 17, 2017

사람을 알게 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유효기간이 있는 듯하다. 어딜 가든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하루가 되었든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만, 그 사이에 오가는 것은 무척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어떤 형식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정말 값진 행위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면, 자라온 환경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그 시간이 더욱 줄어들 수도 있지만, 시간과 관계 없이 일단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나누고 주위 사람들과의 벽을 허물어간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게 작은 조각들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마치 바닷가의 조개껍질 같아서, 작은 해변을 이루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가져오는 세상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덜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된다.

때로는 그 조각들이 다른 형태를 갖추어 나타날 때가 있다. 어느 관계는 그저 겉에서 맴도는 것과 같은, 얕은 관계지만 어쩔 때는 내가 모르는 사이 그것은 깊게 스며든다. 마음의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니, 그것이 다른 조각들보다 깊게 뿌리내려 마음 한 구석에 슬그머니 자리잡아도 난 결코 모를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람을 그만큼 깊게 알게 된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일뿐더러, 흔들리는 배를 붙잡아줄 닻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먹는다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이국적인 음식, 처음 듣는 취향의 음악이나 좋아한다던 감독의 영화라던지, 그런 것들을 알게 된다. 사소하지만 단순히 그 사람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되는 것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그 감정은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것을 보고 닻을 내릴 수도 있고, 옷 입는 취향을 보고 움찔하는 것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 그 사람은 어쩌면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단잠을 즐기고 간단한 요리는 뚝딱 만드는 재주를 가졌을지도 모르며, 특정 옷을 입는 것을 고집하며 옷장에 그러한 옷들이 나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까닭에 여러가지 일에 능할 수도 있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과목에 흥미를 보일 수도 있다. 난 이런 걸 알게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이 즐겨듣는 노래나 짙은 녹색 계열의 색깔을 못 본다는 것,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등 소소한 꿈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난 이러한 것들이 조금 신비로우면서도 무섭다고 생각한다. 사람 관계라는 것은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 않은 이상 결코 영원하다고 할 수 없다. 짧거나 길거나, 모두 지나가는 낙엽마냥 스쳐가는 인연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고, 더욱 애틋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끊는다는 건 마치 해변가에서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모래 틈새로 조개껍질이나 이따금 유리 조각 같은 흔적을 남겨둔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밀물이 나가고 나면 그곳에는 거대한 공허함이 남는다. 썰물을 쫓으려 드는 것도 의미 없다. 흐르는 물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으니 떠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난 이따금 그 가수가 새로 발표한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자주 가던 카페의 새 메뉴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애초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다분히 부질없지만, 그것이 관계를 맺고 끊음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썰물이 빠져나가면 발가락 끝을 간질이는 조개껍질의 존재를 느끼며 그곳에 잠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채 깨지 않은 단꿈에 머물러 쉬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꿈은 꿈이니, 결국은 깰 수밖에.

 

 

 

(단편) 밤

Korean March 27, 2017

지평선을 뒤덮던 햇살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황혼 속 빛의 시작과 끝을 구별하지조차 못하게 될 때, 나그네는 파도가 머물던 곳을 지나간다. 바다는 해가 지고 떠도 계속 말을 내뱉는마냥 울렁였고 발 아래 모래에 남겨진 발자국에는 그리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바다 속 손가락 사이를 가르는 얼룩진 물결에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그네의 발길이 지나는 모든 길에는 마음이 흔들린 흔적이 있다. 밤이 지나고 보낼 연서를 마음에 꼭 담아둔 채, 그는 발길을 바삐 한다. 반딧불의 향연은 그가 걷는 길을 비추고 그 흔들리는 불빛조차 그의 마음 한 가닥 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연서는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울렁이는 마음을 끝내 감추고 숨겨, 태가 나지 않을 때까지 삼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생각 한 켠에 잔뜩 요동치고 있는 그리움이 그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연서를 쓸 적을 생각했다. 연서를 쓴 종이를 고이 접어 봉투 입구에 예쁜 토끼풀 한 가닥을 묶어놓았던 그 손길을. 그도 안다. 사실 그 연서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음을. 마음을 삼키고 숨겨, 옮겨 적으려는 순간 그 마음은 두려워 꽁꽁 숨어버렸다. 그녀가 봉투를 열어 연서를 꺼내보아도 연서는 단어 하나, 또 마음 하나조차 속삭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그네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종소리 나는 아침이 와서, 그가 그곳에 다다랐을 때, 이것을 핑계로 닿을 수만 있다면, 그의 비겁한 마음도 조금은 괜찮아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