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Sophie

I think I write

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쓰며

Korean April 3, 2019

이 이야기는 책에 싣지 못할, 책 집필 과정의 뒷이야기다. 첫 작품인 봄날의 로즈와 달리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출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봄날의 로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간해야지, 라며 쓸 때도 한 달 정도 잡고 매일 5-6시간을 글을 쓰며 1차 교정이 끝나자마자 투고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계획을 진행했었는데, 내 온 마음을 담아서 는 그러기가 조금 어려웠다. 일단 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애초에 봄날의 로즈는 순도 100% 판타지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픽션. 모티브야 중학교 때 연주했던 오케스트라에서 받았다고는 해도 로즈나 이리라는 캐릭터 구상부터 마녀 사냥이라는 소재 모두 지어낸 것이었다. (애초에 배경이 18세기 프랑스이니 개인적인 경험이 들어가긴 조금 어려운 감도 있지만) 내 온 마음을 담아서는 조금 다르다. 그건 어쩌면 회고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 경험담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아, 물론 기억을 잃는 병이라던지 연인이 죽었다던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소재가 내 경험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 묘사라던지 소설 중 일부의 상황을 나에게서 비춘 것이라는 거다.

요즘 글을 왜 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글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도. 10년 동안 밥 먹 듯이 하던 일이라 딱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요즘에서야 그 해답을 조금 얻은 것 같다. 난 그간 공모전이나 글짓기 대회 같은 곳에 글을 내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나만을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내가 내 글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굳이 인정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작가로서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작가는 읽히기 위한 글을 써야하는데, 이걸 보면 난 소설가로서는 조금 글러먹은 듯 하다. 아마 본업으로 소설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지. 그래서 나는 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출간하는 게 약간 두렵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야 어느 정도로 작품 속 소재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을 표현한다지만 나는 그것이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더더욱 꺼려했는지도 모른다. 첫 2부는 캐릭터 구상에 중점을 두었지만 감정 묘사에 공을 들인 3부부터는 쓰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필한 2017에서 2018년 한 해는 내게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다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마음과 밤잠 들지 않는 새의 생각을 모두 적었기에 이 작품은 나를 그대로 발가벗긴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작품에는 오롯이 내 마음을 담았다.

그러니까,는 환이고 성경이다. 나는 환처럼 애달피 기다린 적이 있고, 성경처럼 버거운 마음에 힘들어한 적이 있다. 환의 우유부단한 성경도 내 것이고, 생각이 많다못해 넘치는 성경도 내 모습의 일면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는 기억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알게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 윤환과 천성경은 내가 사랑할 때 나타나는 페르소나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만큼은 주인공 구상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구상은 봄날의 로즈 를 쓸 때 조금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내 소설 속 페르소나에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일면도 있지만 내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면도 있다. 아득한 옛날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몇 년이고 곱씹기만 하는 환의 무른 면이 내겐 그렇다. 안 좋게 말하자면 미련 넘치는 모습이겠지. 그런 면에서 환은 내 모습을 그대로 쪼개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만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정이 가는 것은 조연들이다. 미치코가 나오는 부분들을 쓸 때가 제일 재밌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러시아 여행에 대해 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더 쓰고 싶었는데, 주인공들은 환과 성경이니까… 그냥 과거가 화려한 묘령의 여인으로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언젠가 다른 작품을 쓰게 된다면 조연으로 꼭 출연시키고 싶다. 게다가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 속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연성화다. 뭔가 능글맞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책임지는 타입. 성경이 그를 내칠 때 나도 안타까워 죽을 것만 같았었지. 우리 성화 파이팅. 소희와 희수 이모는 성경이라는 인물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생각해둔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정작 이 둘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데 (나와도 소희가 대학에 다닌다는 것과 럭비 선수를 남자친구로 두었다는 것 정도?) 소설에 설명하지 않은 설정은 이모도 원래 오슬로에서 유학을 와서 그대로 노르웨이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그녀를 따라 노르웨이에 요양을 온 것. 언어 관련 일을 한다고 생각해두었다. 요가를 즐긴다는 설정이 있었어서 성경과 종종 한다는 뒷이야기도 생각만 해두었다… 안경을 쓰고 서글한 인상이 인상적인, 누군가를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아껴줄 수 있는, 절대적인 다정함으로 누군가를 감싸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성화가 그녀의 병을 연구하듯 체계와 물질로 성경을 돌본다면 희수는 정서적으로 성경을 보살피며,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이렇듯 주인공과 조연들이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경과 환, 그리고 희수는 실존하는 인물이 모티브가 된 케이스다. (주로 생각해둔 이미지로 머릿속에서 글을 그리는 편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머릿속에서 영화마냥 이야기가 플레이되어야 글을 쓰는 게 가능하다. 참고로 봄날의 로즈 중 이리의 모티브가 된 사람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다. 사랑합니다 캡틴.)  그리고 희수의 모티브는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즉, 지인이라는 말이다. 주위에 다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리 좋은 것이다.

편지를 소재로 쓴 것은 그냥 내가 굉장히 아날로그적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21세기니 누가 이틀 사흘씩이나 기다려서 편지를 기다릴까 싶으면서도, 뭔가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을 사용해 대화를 나누는 건 정성이 덜하다는 느낌? 그러니 편지를 택한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보다 낭만적인 게 있을까? 내 낭만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담긴 펜촉에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꽤나 악필이고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는 정도. 그래도 꽤나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는 편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의 마음은 글에 고스란히 담긴다. 글을 쓰며 하나하나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글에는 쓰는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온다. 난 글에서 느껴지는 사랑이 좋다. 그리고 그런 이유도 있지만, 내가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마무리가 좋지 못한 사람이라서다. 난 순발력도, 말발도 그닥 좋지 않아서 중요한 순간이 올 때는 항상 해야되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나중에 가서야 그 말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하고 자주 후회하는 편이다. 나는 제때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옮긴다. 그렇게나마 글로 마음을 담으면 전하지 못한 억울함과 서러움이 그렇게 위로가 된다. 그게 습관이 되어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 책은 내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오랜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는 그 친구를 내 온 마음을 담아 아낀다. 세상에서 동떨어졌었던 나를 찾아주었던, 늘 좋은 기억만 있지만 않았지만 그래도 몹시 애틋한, 일기장 같은 친구다. 그 친구가 늘 괜찮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나는 그 시간을 잊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어 쓴 글이다. 이걸로 이제 그간 결말이 없던 내 옛날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사람의 인생이 언제나 소설 같지는 않아 꼭 극적인 어떠한 순간으로 여운을 남기며 끝나지는 않는다. 얼마 전까지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색깔이 터진 듯한 멋진 노을을 보거나 선선한 어느 여름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편할 때는, 내 인생이 소설이라면 이쯤에서 마무리되어도 좋겠다고. 하지만 그건 소설로서 좋은 거지, 삶이 좋은 건 아니다. 소설이 아니니 하루하루 사는 게 버티는 것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죽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삶 속 마음에 드는 순간을 골라 결말을 맺을 수 없다. 그래도 이제는 기억이 두렵지 않아서, 어떤 기억은 기꺼이 잊고, 어떤 것들은 마음껏 기억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잊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루면서 시간에 잠식되어 닳을 수는 있다. 결국,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그게 죽음이나 망각일지라도.

이 후기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출간을 이틀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출판사 투고부터 출간까지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조금 더 개인적인 근황을 적어보자면, 나는 대학교 1학년 기말을 준비하는 중이다. 지금은 그리스 신화 속 등장하는 카타바시스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 중이다. (진짜 너무 어려워서 눈물난다…!) 시험이 끝나고는 한동안 ‘드디어 이 소설을 출간했구나’ 하는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다 초가을쯤 새로운 소설을 기획할 것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쓰기 시작할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빠르게 간다. 앞으로도 더욱 빨라지겠지.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러니 나는 성경과 환처럼, 앞으로도 매일매일 힘을 내서 행복해질 것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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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의 초점

Korean February 6, 2019

문득 작가 프로필 사진을 고르기 위해서 갤러리를 훑는 중에 느낀 게 있다면, 어떤 사진은 내 모습이 잘 나와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있고, 잘 나오지 않았는데 퍽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다. 사실 이것을 오늘 처음 와닿은 건 아닌 게 11학년 때 당시 절친이 찍어준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사진첩에 남겨둘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은 학교 바자회 같은 행사였어서 하루종일 동아리 부스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는데, 몇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몰골이 그렇게 엉망진창일 수가 없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화장은 거의 지워지고… 여하튼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 엉망인 상태로 학교 육상부 트랙에서 노을을 등지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사진첩을 정리할 때 그 사진을 계속 지울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돌아가 봐도, 그 사진은 남겨두었다. 꽤나 못 나온 사진인데도 난 잊을만하면 계속 그 사진으로 돌아가 그때의 시간을 계속 곱씹곤 했다.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결국 사진의 퀄리티와 선호도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어렵사리 깨달았다. 그렇게 느낀 사진은 단 둘이다. 나머지 하나는 고등학교 때 서울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전시회를 보러갔을 때 전시장 앞에서 엄마가 찍어준 사진이다. 그날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는 지금도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때 그 동네 특유의 풀냄새가 좋아서, 7월 중순의 햇볕이 좋아서였는지도 몰랐다. 숨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보이는 풀꽃이 좋아서, 그늘 아래 한 숨 돌리는 게 좋아서. 전시장에는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건 천장의 수조 아래 누워서 물의 무늬를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었고 그대로 물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난 어쩐지 손을 뻗어서 물을 만져보고 싶었다. 이대로 가라앉아 눈을 감아도 마냥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기억에 무겁게 남았다. 이후에 모르는 동네의 언덕을 걷고 생소한 책방을 발견하게 되는 그 하루가 일상에 물결을 일었던 것이다. 기억이 찾아드는 날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고 그때 생각했다.

어떨 때는 기억에 남기고 싶어도 당최 남겨지질 않았다. 사진이란 당시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것인데, 사진을 몇 장이고 찍어도 그날의 기억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내가 그날을 기억하고 싶어도 단순히 사진을 찍은 그 순간만 기억하고 그날의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을 하고 싶어서 기록을 남긴 것이 오히려 그 순간만 잔뜩 부각시켜버린 것이다. 어쩌면 중요했을지도 다른 모르는 요소들은 잠식시킨 채. 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고 또 찍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 사진첩에는 언제나 사진이 많다. 기억하는 순간들은 많은데, 마음에 남는 순간은 손에 꼽힌다. 요컨대, 기억하고 싶은 것과 기억에 남는 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난 어릴 적 엄마가 만든 케이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맛은 어땠는지 기억하고 싶어하지만 문득 생각나는 건 케이크를 만드는 엄마의 모습이었으니까.

사진 한 장 없어도 계속 기억에 남는 것들도 있다. 나는 유독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쓴다. 봄날의 로즈에서도 로즈와 쥬드는 기억을 가지고 내기를 했고 내 온 마음을 담아서에서는 기억을 잊고 싶은 남자와 기억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정서적 교류에 대한 것이니까. 나는 그렇게 계속 머무는 기억에 대해 쓰고 싶었다. 사진 하나 없어도 기억에 영화마냥 재생될 그런 빛바래지 않는 기억 말이다. 나한테는 어떠한 기억이 중요했고 그 기억을 지키려면 어떤 것도 할 수 있었으니까, 가 내 얼마 전까지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이 그렇게 많이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생각하는 것처럼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만두었다. 어차피 머물 기억이라면 굳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굳이 못 잊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그 기억에게 묻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난 그날 사진을 남겨두지 않아서 내심 안도했다. 기록의 부재에 기꺼이, 몇 번이고 마음을 놓았다.

First Try at Lomo

photography October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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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de Park, London 2018


I write to express my feelings: the bed-side thoughts that keep me up on quaint nights, or troubles that cloud my head every passing hour. Or things that I want to remember: the nice cosy cafe by Russell Square station I’ve walked past one early evening or that one night I’ve strolled across the empty park under the biggest full moon ever. When I write stuff like these I try to write them with an immense amount of detail, because to me writing is a way to keep track of things. A way of not forgetting things. I am not going to lie about this pastime of mine by prefacing all my writing with a notion that I derive happiness from simply the act of creating or imagining something. To be ultimately frank I write to remember. Hence my ability to write or lack thereof springs from my desire to keep things intact in my memory. Like a paraphernalia for old and lost moments in my life I often forget about. For some time though, writing was insufficient in capturing everything I want to keep in my memories. Sure, I could describe indefinitely about how I was entranced by the reflection of the moon rippling across the lake or that one stranger I came across who had the oddest-looking boots; but sometimes there were limitations to which I can describe about things I can distinctly recall. So I was looking for other platforms of expression, and somehow I stumbled into lomo cameras.

I have mentioned multiple times on my blog that I am a very analog-obsessed person; I like everything from crumbling old love letters — even if they aren’t addressed to me — to rusty gold-rimmed clocks. I could say that simply the traces of age the items harbor make them different from the modern times, where everything is swift and easy. We can access everything nowadays with a click, press, and a swipe. Nothing was easy back then. Everything had to be thought of countless times before the backlit feeling of the heart could be expressed. It is harder, but hence more thoughtful. The years of hand-held evidence feels different; it just seems more heartfelt and dear. Lomo cameras — analog cameras, so called — use rolls of film to process photographs. And to process film, you would usually have to wait an average of three days. It seems like an agonizing wait for a set of thirty-six photos, but the beauty of time makes up for it. Just imagine taking pictures of the things that you love and thinking and recalling about them for three nights before facing them once again. It is slow, but it feels more precious that way. You learn to appreciate the act of remembering.

In contrary to my previously explained love for lomography however, my first roll turned out to be a disaster. I did not know (although I should have known) that you weren’t supposed to open the back of the camera with the film still rolling — or however professionally you’d phrase that — and exposed my film too early. I ended up losing one-third of my photos. It was a shame, but to be fair the rest of the photos that I’ve managed to salvage were not as exceptional either. I’m satisfied with the few photos, considering that this had been my trial shots. The three photos I have uploaded are my favorite shots (actually the only decent ones in the entire roll), all taken from Hyde Park. I have been to every corner in Fitzrovia street to Hyde Park, but those three were my most memorable ones. The soft-spoken conversation that the couple sitting on the bench was having, the genuine looks they were exchanging — there is an element of intimacy in that moment. It is a feeling that I can never describe fully in words.

One good thing about analog camera is that there is rarely a need to edit them. I usually edit and fix my photos here and there when I use my digital camera — sometimes so drastically that I’d only need a quarter of what I have actually taken. I’d have to edit the brightness or contrast to fully bring out the colors and feelings I was looking with when I was taking the photos. Films capture the moment itself. Its lens has a layer of antiquity marked by a bona fide feeling of sincerity. And that is something I hope to acquire when I look back on my memories — an unfeigned honesty with a hint of wholeheartedness — not with a perfunctory, prompt acknowledgment of past events.

The Art of Writing a Letter about Thinking of You

Life September 28, 2018

I write a lot of letters. On sleepless nights like these, I like to listen to one of my oddly named Spotify playlists and scribble whatever comes up to my mind with my very messy, occasionally – actually most of the times – illegible penmanship. Maybe it’s because that I have this peculiar obsession over the analog era. Old rusty clocks with gold rims that don’t tick anymore or binoculars you use on your night escapades to watch constellations. Besides the point, I just like the idea of completely immersing yourself into the thought of someone while you’re writing about them. The whole moment is surrounded by that one idea of the person. The way you hold your pen, or write your ‘g’s, the words you choose – they are all dominated by the thought of it. It’s more genuine, because the recipient of the letter can actually read the heart and time in between the lines.

I feel like it’s a more effective way to deliver a thought to someone you care, more than a text or an email. But that’s just me. There are probably faster, more effective ways to tell someone you care. It also does not help that I am analog-obsessed. So as much as I love receiving a letter, I love writing them. When I have someone I just can’t get off my mind I start writing. I write about everything. About my day — the one good halloumi wrap I ate that morning, the homeless guy sleeping I saw on my way to the park, this old record shop selling a bunch of ABBA records that I probably should not get, or hours spent trying to tell apart the stars at night. And sometimes I write about writing about them. About how much I think of them. I write about thinking of writing about them. I rarely send them though, because sometimes they are so transparent and honest that I would feel too exposed and bare just by the thought of them being read. Most of my letters are disposed before they are sent.

That’s probably the reason I grew up to be a coward. The more letters I write, the more I hide when I actually have to say something. It wouldn’t matter to me because I would just say those in the letters. The letters I will never send. The letters that will never be read. The words he will never know. I have many regrets about things I hadn’t had the chance to say. I write them all down, well-knowing they will never get delivered, and try to send the thoughts away by disposing the letter in the morning. Will I have more regrets about unspoken thoughts and hearts? Probably. So I write this as an extension to my unresolved letters. Who knows, this might be a letter in disguise too.

The Difference between a Fish and I

Life September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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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when I was ten, I was afraid of swimming. I didn’t like the feeling of water brimming up to my throat when I immersed myself in water. I didn’t like the pressure of water pressing against my eyelids, or the slightest distance between my feet and the bottom of the water my toes could never reach. I hated the weight of my own body bringing myself to the brink of drowning. I didn’t like the feeling of losing control of my own body. The aversion reached to the point to which I felt like I was losing a grasp of myself whenever I sank beneath the waters. I am a month short of nineteen as I write this, and I am perfectly capable of swimming and manoeuvering my limbs underwater. And I also understand my deep aversion for swimming when I was little. I didn’t like it when things got out of my hands, so hopelessly that I can’t even attempt to handle them.

It is rather odd to realize this through the concept of water. Maybe this is why I have always possessed an element of awe towards marine creatures. Even the two goldfish that lived in the bleak corner of my house when I was eight held some kind of wonder to me. They are so free underwater – free of any sort of physical limitation in an environment I have always found so foreign. (Although using the adjective ‘free’ to describe the goldfish in this case would deem quite ironic because they have lived and died in the minute glass bowl in the corner of my small room in my tiny, tiny apartment.) But it still depresses me a little, just a tad bit whenever I see a giant roasted fish on the dinner table, with is once glossy eyes covered by a layer of dried cloudy mucus, its fins dried up and flesh ready for disassembling. It is a morbid, bleak feeling – a kind of dark promise that I will never be free of whatever that is restraining me either.

If you think about it, my awe towards fish and other marine creatures is completely invalid. It is normal to feel a little physically restrained when underwater, because the water is not our natural habitat. If you put a fish on the shore, I am sure it would feel incapable too. (Not implying that this should be tried out of pure curiosity) Any other land that isn’t home would feel foreign and unfamiliar. By the time I realized that I discovered that my fear of water was more psychological than I had thought.

So I have figured as I waddle towards the end of my teenagehood, that it wasn’t the matter of whether I am capable of swimming or not. It wasn’t simply the question of whether I can successfully maintain my floating stance on the water surface, or move my arms against the waves such that I can propel myself forward. Because I am adept at all of those now, to the extent that if I were involved in a plane crash and I had to escape the wreck and swim to the nearest island, I would probably be able to do that. I can proudly say that my swimming isn’t necessarily terrible, per se. The real issue is that I am still deeply terrified of situations in which I cannot do anything about. I still hate the feeling of helplessness. Throughout my life, there had been various occasions where I was subjected to this; when I say this though, I don’t just mean the triviality, like being unable to open the jam bottle no matter how hard I try (because in most of the cases, it is very likely I can’t).

These occasions hold such an integral position in my life – especially in building who I am as a person. Perhaps that is the reason I am so deeply terrified of this feeling, because it constitutes such a big portion of my identity. Or maybe I dislike changes. Or both. Who knows? The important thing is, I am still learning. I have found out that my fear doesn’t actually lie in swimming. I have discovered the specific cause of the ‘phobia’. I’ve narrowed it down to a point where this feeling usually occurs during human-to-human interactions, in cases where people I love are at their lowest point and are slipping through my fingers. I am continuously finding more things about myself – but I also know now that just because something is so integral to the construction of your identity, it doesn’t mean that it has to dominate yourself as a person.

A fish can swim. So can I. I was afraid of swimming, and I bet you a fish will not be the most delighted to venture on land. At least now, I’ve disintegrated the fear further enough that I understand myself more than I did before. Maybe one day I won’t even remember that I’ve had this fear of swim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