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Aloha, Sophie

벌써 2018년이다. 난 언제나 내가 길가의 잡초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잡초가 무럭무럭 자라버렸다. 이제는 내 나이의 앞자리도 더 이상 1이 아니다. 싱가폴에서도, 한국에서도 성인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야 어른이라는 것이 청소년으로서 얻을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이었지만 아마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발길 끊긴 섬마냥 계속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조금 대책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 매뉴얼이라도 있어야지 싶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만 자라 갑자기 세상에 내던져졌는데, 그렇다고 어른에게 어떻게 어른답게 사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답이 있긴 할까? 나는 어른이어도 어른답지 못한 사람들을 수두룩하게 봤고, 아이여도 어른만큼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도 봤다. 그 애매한 중간 선을, 난 넘을 수 있을까?

난 문제가 많다. 살면서 그늘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해를 등지는 그늘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늘이 없다, 라는 말이 좋다. 어두운 곳도, 서늘한 곳도 없다는 뜻이니까. 해처럼 빛나는 사람이 부럽다. 언제나 사랑 받으면서 자랐구나, 소리를 듣는 사람들. 주름진 곳 하나 없는 그런 사람들. 무엇을 보고 듣던, 마냥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 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내게 문제가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저기 멀리 해가 있다면, 난 빛 한 점 없는 그늘 같은 느낌. 난 정말 꼬였고, 생각도 지나치게 많고, 사서 고생한다. 욕도 잘하고 미련만 많아서는 손에 쥔 것은 그것이 설령 기억뿐이라도 잘 놓지 못한다. 피해 입는 것은 정말 싫어하는 주제에 남에겐 피해만 끼치고 다닌다.

그런데 그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늘을 넘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난 내 좋은 점을 생각한다. 난 혼자 있어도 에너지를 얻는다. 하루종일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노래를 들어도 괜찮다. 성격은 더럽지만 생각이 많다는 건 언제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힘들게 좀 시간은 걸려도, 난 같은 고민으로 오래 앓은 적은 없으니까. 난 예전을 그리워 한다. 예전의 사람들, 그 기억들, 그 속의 시간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과거는 손 쉽게 놓을 수 있다. 나는 언젠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울 것이고, 전망 좋은 집에 주말에는 사놓은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잔뜩 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콜마르에서 일주일, 루체른에서 한 달, 그리스에서 일 년을 묵고 싶다. 그곳에서는 사진과 글을 담은, 수필을 쓸 것이다. 그리고 정말 언젠가, 먼 미래 돈을 많이 번다면 알로하 소피 라는 아담한 카페를 차릴 것이고 그곳을 운영하면서 책을 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리운 옛날 이야기나 차마 걸어 지나치지 못하는 현재는 가볍게 걸어갈 수 있다. 무표정 인상이 우울해 보인다는 평을 듣지만 난 볼에 살짝 파인 부분이 있어 웃을 때 보조개가 두 쌍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난 생각이 많아서 순간을 사는 것이 어렵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과 순간들이 있을 때, 매 순간을 아낀다. 그러니까, 난 그늘이지만 그늘을 사랑한다.

난 정말 오랜 길을 걸어왔다. 2017년은 내게 정말 힘든 해였지만, 그리고 그렇게 고생하고도 2018년은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난 괜찮다. 적어도 내 그늘을 알아봤고, 그늘을 사랑할 방법도, 빛을 끌어안을 방법도 찾았으니까 괜찮아. 잘 가 2017. 먼 훗날엔 어쩌면 조금은 보고 싶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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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자락에서 하는 이야기

생각은 힘이다, 라고 여러 번 말했었다. 이것은 내 좌우명이자 동력이기도 했는데, 난 이 한 마디를 되뇌이며 내 자신을 꽤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강점, 약점, 그리고 한없이 어두운 밑바닥까지도, 모두 세세하게 꿰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원래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그 한 해에 대한, 그 속에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모습을 곱씹으며 되돌아보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게 그 해에 알아낸 내 자신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머릿속에 입력하여 다음 해에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이, 모두의 이상적인 연말 계획일지도 모른다. 신년 계획이라는 것도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난 그 루트가 제법 능숙했었다. 그 과정을 하나 하나 즐겼다고 해도 과연 과언은 아니다. 내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그것을 이용해 다음 해의 나를 상상하는 것도. 생각은 힘이니까,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요즘 나는 더없이 회의적이다. 나는 원래 마무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더더욱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일상 생활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아니라 (적어도 최소한은 지킨다고 생각한다) 작년이나 그 전 해나, 글이던 학업이던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내가 회의적인 부분은 대인관계에 대한 것이다. 올해처럼 사람을 많이 만난 해가 없다. 서로 다른 삶을 살다 불쑥 만나게 된 관계도, 얼굴만 알다 갑작스럽게 발전된 관계도, 위태롭던 것이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게 되는 관계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고작 1년 새에 일어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벅차다. 나는 말주변이 없고 발이 좁은 사람이라 그렇게 사교성이 좋지는 못한데, 사실은 조금은 무리하고 있었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건 별로 없어서 사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 싶다. 난 올해 모임에 나가고 약속을 잡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처음부터 그 사람을 알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누군가를 깊게 알게 되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고 사랑스럽지만, 그 깊어지는 과정에 진입하기는 어렵고, 그렇게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얘기와, 질문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게 무색할 정도로, 어쩐지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이득을 바라고 누구와 연을 쌓는 건 꽤 속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관계에서 얻는 안정감이라던지, 같이 있을 때의 편안함과 대화할 때 느끼는 코드라던지, 그런 것들 말이다. 어쩐지 플러스를 바랐는데 마이너스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연말에 느끼기에는 퍽 좋은 추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얇고 넓게 사람을 아는 것보다 그 사람의 성격부터 취향,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까지 알게 되는 걸 좋아할 정도의 깊고 좁게 사귀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관계를 만들 때의 내 신념이기에 내 인간 관계는 꽤나 협소한 편인데 그마저에서도 별로 좋지 못한 결말을 맺은 적도 있다. 내 자신이 바닥에 치닫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인지 나는 사람의 바닥을 보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 그 과정부터 결말까지 어떻게 되는지 내가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 몇 년 전에 나를 도와준 사람이 바닥에서 맴돈다. 한 때는 그 사람 때문에 살고 싶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런 사람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마저도 그는 들을 여유가 없지만서도. 관계가 바닥을 치고, 깨지고, 부서지고, 난 그 관계를 주워담으려다 손끝을 다치고- 나를 잘 아는만큼 대인관계도 수월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오만이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지금, 난 결국 그나마 괜찮았던 관계마저 망가뜨리게 되었다. 없느니만 못한 사이일지도 모르는 관계도, 서로 마음을 다쳐 상대하기를 그만둔 것도.

그러니 난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좋은 결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겐 역시 내가 사는 게 최우선이다. 내가 살고 숨쉬는데 있어 내겐 내가 제일 중요하다. 그 전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게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기분이, 내 안위가 그들에 좌우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좋은 친구, 부모님의 좋은 딸, 완벽한 언니. 다 멋진 타이틀이지만 그 틀에 나를 끼워맞추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그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필요 없다.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나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왔기에,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가길 놔두지 않을 것이다.

(단편) 이별의 방식

그러니까,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결국 동물이고, 동물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직감 같은 것이 있다. 항상 찾던 카페의 공기도 왠지 한 바퀴 뛰고 온마냥 무겁게 느껴졌고, 한 숨 한 숨 내쉴 때마다 가슴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불능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는 그 전날 밤 한 숨도 잠들지 못했고 그 정신을 분산시키려고 계속 다른 것을 생각했다. 어느 머그컵에 코코아를 담을까, 그 코코아에 무엇을 얹을까- 마시멜로, 사탕? 코코아를 마신다면 간식과 곁들여야 할까? 같은 쓸모없는 것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 이 순간을 상상해왔던 것 같다. 몇 번이고 연습했던 순간이기에, 실제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손끝에 만져지는 옷깃이나 테이블의 나무 표면 같은 것들, 부엌에서 미미하게 풍겨나오는 패스츄리 냄새, 웨이터의 구두 소리 같은 것들. 나는 그가 오기 전까지 녹빛 벽지 무늬를 눈으로 쫓았다. 색맹이었던 그가 내게 자신이 보는 녹색을 설명해주려 했던 것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그의 눈은 밤새 마음을 쏟아냈는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때문에 그의 눈길은 말라 있었고,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계속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한가득 차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던 탓일까, 나는 마음의 부재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무언가 흐르던 자리가 메말라 버리면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그 아래의 땅이다. 촉촉한 것이 사라지만 흙내음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참을 정적 속에 앉아 있었다. 몇 번이고 생각해왔기에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은 빨리 감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에는 그런 것이 없다. 매 순간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뿐. 그는 내가 옛날에 접어주었던 종이 비행기를 내밀었다. 종이 비행기를 어떻게 접냐며 물어오던 그에게 난 바보 같다며 타박을 하면서도 접어주었던 것을 생각했다. 모서리 하나하나 정성들여 누르며, 반듯한 종이 비행기는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먼저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종이 비행기를 내게 내밀면서도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마음이 가는 길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은 결국 나였다.

사람들은 그가 종이 비행기로 이별을 통보했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 끝에서 종이 비행기를 받은 것은 나였다고, 난 말하지 못했다.

편지를 쓰는 마음 같은 것

연서 끄트머리에 엉성한 손길로 묶인 민들레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살짝 접힌 모서리부터, 종이의 부드러운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면 미약하게나마 꽃 향기가 났다. 한참 전에 지나버린 그 시간의 기억이 솔솔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 봄이 묻어나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끝내 지날 기미가 안 보이는 아득한 겨울 끝에 서서 연서를 받았지만 마음만은 그 너머에 있었다. 햇볕이 녹아내린 듯한 봉투의 노란 종이의 한 구석에는, 비스듬히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그 보잘 것 없는 이름을 꾹꾹, 한 자씩 눌러 썼을 손끝이 문득 떠올랐다. 그 고운 손결을 탔을 글자가 얼마나 어여쁜지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두 손 꼭 쥐고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서투른 손길로 살짝 독특한 취향의 우표를 붙이고 오래 전에 책장 속에 고이 말리었던 민들레로 입구를 봉했을 그 애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 마음이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사실 연서가 도착한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해가 지고 달이 드리웠는데도, 또 다른 하루가 꼬박 지나갈지도 모르는데도 그 편지를 손에 꼭 쥐고 발만 동동 굴렀던 것이다. 행여나 그 마음이 닳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꽃잎을 보면서.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썼을 것이다. 나의 얼굴, 눈길, 손끝 하나하나 떠올리며 글을 적었을 것이고, 우편함에 도착한 이것을 받아들 나의 표정을 떠올리며 편지를 부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사실 편지의 내용보다는 나를 생각해주어, 그 울렁이는 마음을 이 연서에 담은 것을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연서를 열기 전, 그 마음을 날 것 그대로 느낄 때까지.


몇 번씩이나 적은 적이 있지만, 난 손글씨 꾹꾹 눌러쓴 편지를 매우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늦은 새벽, 편지에 관한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흘러온 기억 때문에 조금씩 끄적인 게 다다. 나는 평소에 가지고 싶은 게 별로 없다. 웬만한 건 다 있고, 물욕도 (거의 식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없으니 누군가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대답을 하기 일쑤다. 그렇기에 내 친구도 제법 난감했을 것이다. 정 주고 싶다면 초콜릿이나 달라 얘기했건만, 이 애는 내게 장문의 편지를 써주었다. 예전에, 꽤 오래 전에 블로그에 100가지 문답을 적은 적이 있었는데 어렴풋이 편지를 좋아한다는 내용을 적은 기억이 있다. 그것을 본 모양인지, 서투르고 어색하게, 하지만 진심을 담아 썼을 그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고맙다. 왠지 투박한 남자애가 뭘 쓸지 고민하는 것도, 편지 마지막 줄에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해주었던 것도, 이 모든 걸 생각하면 왠지 울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 애에게 보내는 밤 편지다. 그 애는 이것을 결코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 마음이 고맙고 소중해 이 글을 보낸다.

그늘을 사랑했다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었다. 어떨 때는 그늘밤 아래 나누던 향수로 가득한 이야기를 밤새 곱씹기도 하며 돌아가기를 원했고, 어떨 때는 마냥 발걸음이 닿는대로 늘 어디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햇살이 손바닥으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른한 낮에 나와 마음이 망아지마냥 마구 날뛰어도,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도 햇빛은 사방으로, 그리고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니 막아질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늘을 쫓아다녔다. 나뭇잎 아래, 그 조그마한- 어쩌면 손바닥보다도 작을 그 작은 쉼터에서 숨을 돌렸다. 그늘은 많은 말을 속삭이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여름의 끝자락에 걸터앉아 바람으로 옷 끝에 드러난 목덜미를 간질이거나, 해가 무릇 지고 달이 다시금 찾아왔을 때 온 세상을 끌어안고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언제고 조용히, 눈을 떠보면 옆에 있었다. 그러니 그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불가항력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버드나무 아래서는 그 사이에 지는 얼룩진 햇빛을 보며 마냥 머물라며 이야기 하고 싶었고, 잠 못 드는 밤에 창문을 열어놓을 테니 바람으로 불어와 달라고 하고 싶었다. 무르지 않은 부드러움, 그것이 좋았다. 나는 그의 모든 그늘을 사랑했다.


간만에 어쩐지 소설다운 글을 써본 것 같다. 근래에는 일이 많아서 한시도 한 숨 돌릴 새가 없는데도 이렇게까지 살고 있다- 하고 절절히 깨달았을 때가 없다. 요즘은 혼자 서기를 배우고 있다.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이 세상에 내던져졌으니 바닥에 기더라도 움직이는 것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냥 추상적으로 들리더라도 이것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너무 많은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눈길을 돌리면 너울너울 지고 있는 해가 보인다. 뛰는 새 뺨을 스치는 바람이, 이른 아침 방을 한 가득 채우는 빛이, 새벽에 연결음이 끊기고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돌아가기를 원해도 아득한 미래를 걷고 있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늘이 있다. 그늘을 사랑했으니 빛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위안일 것이다.

 

나의 옛날 이야기

지나간 시간의 기록을 보는 건 언제든 재미 있다고 생각한다. 난 예전에 일기를 꽤나 자세하게 썼는데, 누구와 뭘 했고 어딜 갔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세세하게 적곤 했다. 그날 하루 좋아하는 남자애한테서 종이 학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그날 과학 보충 수업이 끝나고 먹었던 아이스크림 맛이 어땠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 강아지가 매우 귀여웠다던지 하는… 하루하루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을 정말 빠짐없이 썼는데, 이건 마치 약간의 강박증과도 같아서, 그 순간을 이루는 작은 디테일이라도 빼놓으면 어쩐지 내내 찝찝한 느낌이다. 예전에 가족끼리 여행을 꽤나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여행을 다니며 있었던 일을 기록하라며 공책 하나를 줬었다. 파란 배경의 스누피 그림이 귀여웠던- 그럴 때면 모든 것을 적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간 곳, 느낀 것 하나하나 모두 적곤 했다. 좋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정말 괴롭다.

그러니까 난 순간을 기록하는 게 좋다. 그게 사진을 찍던,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던, 글을 적던, 순간의 반짝임을 기억 속에 담는 게 좋다. 그것이 설령 마냥 말랑말랑하고 예쁜 그림이 아니더라도 연필 꾹꾹 눌러 적는 글이 좋다. 어제의 일들을 잊어, 라고 말하기엔 난 모든 순간의, 실수투성이 헛점 가득한 내가 좋고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는 것이 재미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난 오늘 아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옛 학교를 방문했다. 내가 숨쉬고 매일 뛰어왔던 복도를 거닐며 난 향수에 잠겨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학생들이 오고 간 흔적이 남아 있는 빈 복도는 아주 조용했고, 이야기에는 기억이 실려 구석구석 울려퍼졌다. 너무 궁지에 몰릴 땐 한 구석에서  사탕 하나 손에 쥔 채 숨죽여 울고, 한때 학년 차석을 차지할 정도로 수학을 (지금의 나로서도 매우 의외지만) 정말 잘했고, 모 도넛 브랜드와 흡사한 교복에 대해 투덜대던 그 시절의 나를 생각했다. 난 그 시절 꼭대기 층에 서서 언젠가는 숨막히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3년 뒤 같은 곳에 다시 서서 나를 마주볼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내 옛날 이야기를 알아볼 누군가가 있었을까.

난 그저 일개 사람이기 때문에 내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없다. 내게 모진 말을 내뱉고, 그날의 기분을 잡초마냥 짓밟은 사람이라도 어쩌면 무릇 잊혀질지도 모른다. 난 정말 잡초 같아서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말보다, 며칠 전 엄마가 해준 정말 맛있었던 햄과 치즈 토스트가 더 기억에 남는다. 엄마한테 다시 해달라고 해야지, 라는 것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단순한 사람이라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망각이라는 것은 어쩌면 기억의 동반자 같은 것이라, 좋지 못한 꿈을 꿀 때 눈을 감겨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난 오늘 하루의 노을 색깔을 기억할 것이다. 여름 그 중간에서, 남색 끝자락에 햇빛이 따뜻한 선홍빛과 산뜻한 주홍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그 사이로 비행운이 지나가는 것을 두고두고, 달콤한 사탕 같은 것을 입에 오래 오물거리고 있듯 곱씹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와, 열 다섯의 나와 마주했던 자리, 그리고 그 노을. 그 세 가지를 오래오래, 기억하겠지.

오늘 집에 올 때쯤에는 뉘엿 지던 해가 완연히 저물고, 밤을 비추는 빛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난 노래를 들으며 그 아래서 춤을 출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발걸음 하나를 가볍게 움직이고, 노랫소리를 읊조리며.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기억해 마땅한 하루. 난 기억의 옷깃만 만져도 그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옷깃, 그 자락 하나로 충분하다. 전체를 볼 방법이 없으니, 늘 전체의 일부만 어렴풋이 볼뿐이다. 그 옷깃에 스며든 쪽빛, 그 기억 사이로. 어차피 평생 진리의 조각만 찾아다니는 삶이니,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시간이 흐른 언젠간, 이 순간조차 나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 난 이 글을 읽으며, 이때를 회상할 것이다.

오늘의 추천 곡: 아이유 (원곡 이상은)- 비밀의 화원


추신. 요즘 본업인 소설보다 수필 같은 글을 조금 더 많이 적는 것 같아서 약간의 위기감도 들기 시작했다. 약간 생각의 흐름 같은 글이랄까. 시작해놓은 장편 소설은 4부만 남겨둔 채 끝내지 못한 상태니까… 하지만 뭐 어때.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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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스쳐가는 낭만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낭만이라 하면 뭔가 뜨겁고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떠올릴 법한데 (그렇게 따지자면 난 인생에 전혀 낭만의 순간이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낭만은 그저 기억을 두고두고 달게 만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거창할 필요 없이, 그 순간 시간을 잃어버린다면, 어떠한 마음에 빠져 밤새 뒤척이거나 아무 이유 없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낭만이 아닐까 싶다. 흑백인 시간에 색깔을 덧입혀 주는 것. 어쩌면 보라색, 연분홍, 부드러운 남색일지도 모르는 기억이, 낭만이 스며든 순간이다.

최근에 단편을 쓸 때 이군을 모티브로 삼았었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이군은 내 기억 속의 아픈 구석이다. 아프고, 예쁘고, 기분 좋은 말랑말랑한 구석. 이군은 중학교 때 만난 친구다. 우리는 친구라기엔 조금 애매한 거의 펜팔 수준의 사이였는데, 실제로 어떻게 만났는지조차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수준이었고, 그것이 빨리 친해지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군은 뭔가, 말투가 사근사근하다. 말을 정말 뭐랄까, 시적으로 예쁘게 한다. 또래 남자애들 중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모범생에 쓴소리 못하는 바른 학생인데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만나면 자기 얘기를 하기보단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조곤조곤 맞장구쳐줄 것 같은 이미지. 맞춤법도 철저하고 (이것이 은근 크게 신경쓰이는 요소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또래보다 너무 빨리 철들어 버렸다- 가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음…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에 대해서 조금 말해두자면 난 그 당시 조금 예민한 아이였다. 이리저리 튀어다녀 여기저기 멍이 들고, 툭 건들면 울 듯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아이. 딱히 뭐에 화가 나 있지도 않았고, 누가 모진 말을 해 축 쳐져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시종일관 기운이 없고 저기압이었다.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고, 털어놓을 기회가 오면 입을 꾹 다물고 모르쇠 해버리는, 그런 답답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안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때는 더욱 그랬다. 그래,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던 시기였다. 화를 내면 더욱 초라하고 비참해져서 우울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갈 당시에, 난 내 상황에 대해서 별로 설명을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설명할 길이 없어 끙끙댔던 기억이 있다. 당최 갈 길이 생각나지 않아 동네를 3시간 동안 정처없이 헤맸던 적이 있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잡념 가득한 생각을 지워버리려고 발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걸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해가 질 때쯤이었는데, 이군은 내게 ‘가여워라’ 라는 말을 했었다. 그날의 모든 것이 기억난다. 집 앞 수영장의 벤치에 앉아, 보라색으로 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여름날 선바람은 얄팍한 천에 감싸진 피부를 춥게 만들었지만 그말을 듣고 머리 속에서 따뜻한 뭔가가 천천히 번져나갔었다. 난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군은 그렇게 말을 했었다. 다른 누가 들으면 그것이 동정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내겐 이해였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누가 알아봐준 느낌. 동굴 속에 불을 비춰준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군은… 음, 아마 기억도 못할 것이다. 워낙 오래된 일이고, 지나가듯 한 말이었을 테니까. 나중에 안 얘기지만, 이군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도 같은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한때 그랬으니까, 더욱이 이해를 해줄 수 있던 것이었다고. 이군도 어렸고, 나도 그랬다.

내가 그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이군 덕이었다. 한 번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으나, 분명 이군 덕이다. 이군과 난 관심사가 꽤나 비슷했고 원하는 것이 겹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우린 요리, 글, 음악,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군이 좋다던 음악은 들어봤고, 이군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도 읽었다. 꽤 낭만적이었다. 하굣길에 강을 지나는 전철의 창문을 내다보며 이군과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라는 것은 무의미 했었다. 항상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린 어쩔 땐 철저히 단순히 이용가치에 의한 사이였고, 그 거리감이 어쩔 땐 조금 씁쓸했으나 이군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이군은 아주 오랜만에 얘기해도 그대로고, 날 있는 그대로 한결같이 봐주는 사람이다. 기다려도 되지 않는, 긴 기다림에 있어 전혀 무관한 사람. 사실 이군이라면 기꺼이 기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있어 이군을 편하게 한다. 울어도 웃어도 화내도, 시간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도 언제든 한결같으니. 이군은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 중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자, 나의 온갖 치부와 바닥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지금 내 열아홉 인생에 진정한 낭만이 단 한 순간이라도 있었다면 이때였을 것이다. 내 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걷는 사람이다. 이군과 나는 여전히 친구고, 혹여나 이제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한다 하여도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 뭘하든, 이군만큼은 꼭 잘됐으면 좋겠다.

오늘의 추천곡: 그럴걸- 김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