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쓰며

Korean April 3, 2019

이 이야기는 책에 싣지 못할, 책 집필 과정의 뒷이야기다. 첫 작품인 봄날의 로즈와 달리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출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봄날의 로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간해야지, 라며 쓸 때도 한 달 정도 잡고 매일 5-6시간을 글을 쓰며 1차 교정이 끝나자마자 투고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계획을 진행했었는데, 내 온 마음을 담아서 는 그러기가 조금 어려웠다. 일단 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애초에 봄날의 로즈는 순도 100% 판타지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픽션. 모티브야 중학교 때 연주했던 오케스트라에서 받았다고는 해도 로즈나 이리라는 캐릭터 구상부터 마녀 사냥이라는 소재 모두 지어낸 것이었다. (애초에 배경이 18세기 프랑스이니 개인적인 경험이 들어가긴 조금 어려운 감도 있지만) 내 온 마음을 담아서는 조금 다르다. 그건 어쩌면 회고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 경험담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아, 물론 기억을 잃는 병이라던지 연인이 죽었다던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비극적인 소재가 내 경험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 묘사라던지 소설 중 일부의 상황을 나에게서 비춘 것이라는 거다.

요즘 글을 왜 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글을 쓸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도. 10년 동안 밥 먹 듯이 하던 일이라 딱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요즘에서야 그 해답을 조금 얻은 것 같다. 난 그간 공모전이나 글짓기 대회 같은 곳에 글을 내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나만을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내가 내 글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굳이 인정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작가로서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작가는 읽히기 위한 글을 써야하는데, 이걸 보면 난 소설가로서는 조금 글러먹은 듯 하다. 아마 본업으로 소설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겠지. 그래서 나는 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출간하는 게 약간 두렵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야 어느 정도로 작품 속 소재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을 표현한다지만 나는 그것이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더더욱 꺼려했는지도 모른다. 첫 2부는 캐릭터 구상에 중점을 두었지만 감정 묘사에 공을 들인 3부부터는 쓰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필한 2017에서 2018년 한 해는 내게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다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마음과 밤잠 들지 않는 새의 생각을 모두 적었기에 이 작품은 나를 그대로 발가벗긴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작품에는 오롯이 내 마음을 담았다.

그러니까,는 환이고 성경이다. 나는 환처럼 애달피 기다린 적이 있고, 성경처럼 버거운 마음에 힘들어한 적이 있다. 환의 우유부단한 성경도 내 것이고, 생각이 많다못해 넘치는 성경도 내 모습의 일면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는 기억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알게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 윤환과 천성경은 내가 사랑할 때 나타나는 페르소나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만큼은 주인공 구상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구상은 봄날의 로즈 를 쓸 때 조금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내 소설 속 페르소나에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일면도 있지만 내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면도 있다. 아득한 옛날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몇 년이고 곱씹기만 하는 환의 무른 면이 내겐 그렇다. 안 좋게 말하자면 미련 넘치는 모습이겠지. 그런 면에서 환은 내 모습을 그대로 쪼개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만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정이 가는 것은 조연들이다. 미치코가 나오는 부분들을 쓸 때가 제일 재밌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러시아 여행에 대해 환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더 쓰고 싶었는데, 주인공들은 환과 성경이니까… 그냥 과거가 화려한 묘령의 여인으로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언젠가 다른 작품을 쓰게 된다면 조연으로 꼭 출연시키고 싶다. 게다가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 속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연성화다. 뭔가 능글맞고 장난스러우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책임지는 타입. 성경이 그를 내칠 때 나도 안타까워 죽을 것만 같았었지. 우리 성화 파이팅. 소희와 희수 이모는 성경이라는 인물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생각해둔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정작 이 둘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데 (나와도 소희가 대학에 다닌다는 것과 럭비 선수를 남자친구로 두었다는 것 정도?) 소설에 설명하지 않은 설정은 이모도 원래 오슬로에서 유학을 와서 그대로 노르웨이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그녀를 따라 노르웨이에 요양을 온 것. 언어 관련 일을 한다고 생각해두었다. 요가를 즐긴다는 설정이 있었어서 성경과 종종 한다는 뒷이야기도 생각만 해두었다… 안경을 쓰고 서글한 인상이 인상적인, 누군가를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아껴줄 수 있는, 절대적인 다정함으로 누군가를 감싸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성화가 그녀의 병을 연구하듯 체계와 물질로 성경을 돌본다면 희수는 정서적으로 성경을 보살피며,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이렇듯 주인공과 조연들이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경과 환, 그리고 희수는 실존하는 인물이 모티브가 된 케이스다. (주로 생각해둔 이미지로 머릿속에서 글을 그리는 편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머릿속에서 영화마냥 이야기가 플레이되어야 글을 쓰는 게 가능하다. 참고로 봄날의 로즈 중 이리의 모티브가 된 사람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다. 사랑합니다 캡틴.)  그리고 희수의 모티브는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즉, 지인이라는 말이다. 주위에 다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리 좋은 것이다.

편지를 소재로 쓴 것은 그냥 내가 굉장히 아날로그적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21세기니 누가 이틀 사흘씩이나 편지를 기다릴까 싶으면서도, 뭔가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을 사용해 대화를 나누는 건 정성이 덜하다는 느낌? 그러니 편지를 택한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보다 낭만적인 게 있을까? 내 낭만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담긴 펜촉에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꽤나 악필이고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는 정도. 그래도 꽤나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는 편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의 마음은 글에 고스란히 담긴다. 글을 쓰며 하나하나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글에는 쓰는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온다. 난 글에서 느껴지는 사랑이 좋다. 그리고 그런 이유도 있지만, 내가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마무리가 좋지 못한 사람이라서다. 난 순발력도, 말발도 그닥 좋지 않아서 중요한 순간이 올 때는 항상 해야되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나중에 가서야 그 말을 해주었어야 했는데, 하고 자주 후회하는 편이다. 나는 제때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옮긴다. 그렇게나마 글로 마음을 담으면 전하지 못한 억울함과 서러움이 그렇게 위로가 된다. 그게 습관이 되어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 책은 내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오랜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는 그 친구를 내 온 마음을 담아 아낀다. 세상에서 동떨어졌었던 나를 찾아주었던, 늘 좋은 기억만 있지만 않았지만 그래도 몹시 애틋한, 일기장 같은 친구다. 그 친구가 늘 괜찮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나는 그 시간을 잊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어 쓴 글이다. 이걸로 이제 그간 결말이 없던 내 옛날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사람의 인생이 언제나 소설 같지는 않아 꼭 극적인 어떠한 순간으로 여운을 남기며 끝나지는 않는다. 얼마 전까지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색깔이 터진 듯한 멋진 노을을 보거나 선선한 어느 여름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편할 때는, 내 인생이 소설이라면 이쯤에서 마무리되어도 좋겠다고. 하지만 그건 소설로서 좋은 거지, 삶이 좋은 건 아니다. 소설이 아니니 하루하루 사는 게 버티는 것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죽음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삶 속 마음에 드는 순간을 골라 결말을 맺을 수 없다. 그래도 이제는 기억이 두렵지 않아서, 어떤 기억은 기꺼이 잊고, 어떤 것들은 마음껏 기억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잊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루면서 시간에 잠식되어 닳을 수는 있다. 결국,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그게 죽음이나 망각일지라도.

이 후기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출간을 이틀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출판사 투고부터 출간까지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조금 더 개인적인 근황을 적어보자면, 나는 대학교 1학년 기말을 준비하는 중이다. 지금은 그리스 신화 속 등장하는 카타바시스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 중이다. (진짜 너무 어려워서 눈물난다…!) 시험이 끝나고는 한동안 ‘드디어 이 소설을 출간했구나’ 하는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다 초가을쯤 새로운 소설을 기획할 것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를 쓰기 시작할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빠르게 간다. 앞으로도 더욱 빨라지겠지.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러니 나는 성경과 환처럼, 앞으로도 매일매일 힘을 내서 행복해질 것이다.

내 온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생각한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