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Korean June 24, 2018

눈사람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만 오면 그녀는 그때를 생각했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 이제는 까마득히 남은 기억뿐인데도, 그녀는 그 조각들을 짚으면 그때를 생각했다. 이제는 그 어느 겨울도 그때와 같지 않다. 지금은 그저 메마른 황무지에 눈덩이가 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겨울은 달랐다. 고즈넉한 12월의 설원 저편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 치는 것을 생각했다. 귓가를 찌르는 정적 사이를 얄팍하게 파고드는 그녀의 목소리를. 그가 어떻게 돌아보았더라?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던가, 아니면 그저 설원 저편에서 그녀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던가. 그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 것도, 아무도 없는 설원을 그리 사무치게도 보았던 그의 시선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나. 이제는 모든 것이 부질없었음에도 그녀는 아스라이 남은 눈꽃 하나하나를 되짚었다. 발이 푹푹 담기는 눈에도 자그마한 불꽃이 있었다. 눈 속에 숨은 그 온기를 찾듯 그들은 눈을 두 손으로 끌어모았다. 말없이 눈을 빚는 그 손은 장갑을 끼지 않아 빨갛게 얼어있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눈사람의 몸통을 토닥이는 그는 역시나 발개진 콧잔등을 찡그렸었다. 언 손을 이따금 주머니 속에 찔러넣으며 그는 한사코 자신은 괜찮다고 그녀를 달랬었다. 그녀는 그 거짓말에 까무룩 속아 고개를 끄덕였더랬지. 그러니 그의 시선이 자꾸 그녀의 궤도를 벗어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시선의 꽁무니만 계속 쫓았다. 눈사람이 있던 자리에 모닥불을 피워, 그 자리가 까맣게 그을릴 때까지, 그 시선의 끝에만 다다를 수 있었다.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도, 역에서 작별 인사를 나눌 때도, 그 시선은 언제나 너무 멀리 머물러 있었다. 세월이 훨 흐르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 찾아들 적엔 그녀는 그을음마냥 그가 마음에 까맣게 번지면 그저 그 눈길을 생각했다. 그녀에 머물지 않던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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