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하는 이야기

생각은 힘이다, 라고 여러 번 말했었다. 이것은 내 좌우명이자 동력이기도 했는데, 난 이 한 마디를 되뇌이며 내 자신을 꽤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강점, 약점, 그리고 한없이 어두운 밑바닥까지도, 모두 세세하게 꿰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원래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그 한 해에 대한, 그 속에 있는 내 자신에 대한 모습을 곱씹으며 되돌아보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게 그 해에 알아낸 내 자신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머릿속에 입력하여 다음 해에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이, 모두의 이상적인 연말 계획일지도 모른다. 신년 계획이라는 것도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난 그 루트가 제법 능숙했었다. 그 과정을 하나 하나 즐겼다고 해도 과연 과언은 아니다. 내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그것을 이용해 다음 해의 나를 상상하는 것도. 생각은 힘이니까,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요즘 나는 더없이 회의적이다. 나는 원래 마무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더더욱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일상 생활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아니라 (적어도 최소한은 지킨다고 생각한다) 작년이나 그 전 해나, 글이던 학업이던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내가 회의적인 부분은 대인관계에 대한 것이다. 올해처럼 사람을 많이 만난 해가 없다. 서로 다른 삶을 살다 불쑥 만나게 된 관계도, 얼굴만 알다 갑작스럽게 발전된 관계도, 위태롭던 것이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게 되는 관계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고작 1년 새에 일어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벅차다. 나는 말주변이 없고 발이 좁은 사람이라 그렇게 사교성이 좋지는 못한데, 사실은 조금은 무리하고 있었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건 별로 없어서 사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 싶다. 난 올해 모임에 나가고 약속을 잡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처음부터 그 사람을 알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누군가를 깊게 알게 되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고 사랑스럽지만, 그 깊어지는 과정에 진입하기는 어렵고, 그렇게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얘기와, 질문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게 무색할 정도로, 어쩐지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이득을 바라고 누구와 연을 쌓는 건 꽤 속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관계에서 얻는 안정감이라던지, 같이 있을 때의 편안함과 대화할 때 느끼는 코드라던지, 그런 것들 말이다. 어쩐지 플러스를 바랐는데 마이너스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연말에 느끼기에는 퍽 좋은 추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얇고 넓게 사람을 아는 것보다 그 사람의 성격부터 취향,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까지 알게 되는 걸 좋아할 정도의 깊고 좁게 사귀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그것이 관계를 만들 때의 내 신념이기에 내 인간 관계는 꽤나 협소한 편인데 그마저에서도 별로 좋지 못한 결말을 맺은 적도 있다. 내 자신이 바닥에 치닫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인지 나는 사람의 바닥을 보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 그 과정부터 결말까지 어떻게 되는지 내가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 몇 년 전에 나를 도와준 사람이 바닥에서 맴돈다. 한 때는 그 사람 때문에 살고 싶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런 사람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마저도 그는 들을 여유가 없지만서도. 관계가 바닥을 치고, 깨지고, 부서지고, 난 그 관계를 주워담으려다 손끝을 다치고- 나를 잘 아는만큼 대인관계도 수월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내 오만이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지금, 난 결국 그나마 괜찮았던 관계마저 망가뜨리게 되었다. 없느니만 못한 사이일지도 모르는 관계도, 서로 마음을 다쳐 상대하기를 그만둔 것도.

그러니 난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좋은 결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겐 역시 내가 사는 게 최우선이다. 내가 살고 숨쉬는데 있어 내겐 내가 제일 중요하다. 그 전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게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기분이, 내 안위가 그들에 좌우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좋은 친구, 부모님의 좋은 딸, 완벽한 언니. 다 멋진 타이틀이지만 그 틀에 나를 끼워맞추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그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필요 없다.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나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왔기에,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가길 놔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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