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는 마음 같은 것

연서 끄트머리에 엉성한 손길로 묶인 민들레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살짝 접힌 모서리부터, 종이의 부드러운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면 미약하게나마 꽃 향기가 났다. 한참 전에 지나버린 그 시간의 기억이 솔솔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 봄이 묻어나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끝내 지날 기미가 안 보이는 아득한 겨울 끝에 서서 연서를 받았지만 마음만은 그 너머에 있었다. 햇볕이 녹아내린 듯한 봉투의 노란 종이의 한 구석에는, 비스듬히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그 보잘 것 없는 이름을 꾹꾹, 한 자씩 눌러 썼을 손끝이 문득 떠올랐다. 그 고운 손결을 탔을 글자가 얼마나 어여쁜지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두 손 꼭 쥐고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서투른 손길로 살짝 독특한 취향의 우표를 붙이고 오래 전에 책장 속에 고이 말리었던 민들레로 입구를 봉했을 그 애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 마음이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사실 연서가 도착한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해가 지고 달이 드리웠는데도, 또 다른 하루가 꼬박 지나갈지도 모르는데도 그 편지를 손에 꼭 쥐고 발만 동동 굴렀던 것이다. 행여나 그 마음이 닳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꽃잎을 보면서.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썼을 것이다. 나의 얼굴, 눈길, 손끝 하나하나 떠올리며 글을 적었을 것이고, 우편함에 도착한 이것을 받아들 나의 표정을 떠올리며 편지를 부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사실 편지의 내용보다는 나를 생각해주어, 그 울렁이는 마음을 이 연서에 담은 것을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연서를 열기 전, 그 마음을 날 것 그대로 느낄 때까지.


몇 번씩이나 적은 적이 있지만, 난 손글씨 꾹꾹 눌러쓴 편지를 매우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늦은 새벽, 편지에 관한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흘러온 기억 때문에 조금씩 끄적인 게 다다. 나는 평소에 가지고 싶은 게 별로 없다. 웬만한 건 다 있고, 물욕도 (거의 식욕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없으니 누군가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대답을 하기 일쑤다. 그렇기에 내 친구도 제법 난감했을 것이다. 정 주고 싶다면 초콜릿이나 달라 얘기했건만, 이 애는 내게 장문의 편지를 써주었다. 예전에, 꽤 오래 전에 블로그에 100가지 문답을 적은 적이 있었는데 어렴풋이 편지를 좋아한다는 내용을 적은 기억이 있다. 그것을 본 모양인지, 서투르고 어색하게, 하지만 진심을 담아 썼을 그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고맙다. 왠지 투박한 남자애가 뭘 쓸지 고민하는 것도, 편지 마지막 줄에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해주었던 것도, 이 모든 걸 생각하면 왠지 울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 애에게 보내는 밤 편지다. 그 애는 이것을 결코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 마음이 고맙고 소중해 이 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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