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Screen Shot 2017-03-27 at 2.50.13 pm.png


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 시를 언제 썼는지 전혀 모르겠다. 날짜상으로는 꽤나 한참 전에 쓴듯 한데, 나는 전혀 이 시를 쓴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 하도 글을 안 써서 예전 글이나 구경하려고 폴더를 열었는데, 이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낯부끄러운 시를 썼는지, 어지간히 새벽녘에 슬픈 영화를 잔뜩 보고 쓴 듯 하다… 물론 기억은 안 나지만. 저때나 지금이나 사랑이라는 개념은 내게 꽤나 생소하다. 애초에 그 분야에 대해 견해가 없어 딱히 뭐라 정의할 수는 없겠지- 물론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나는 많은 것을 사랑한다.

비 오는 날 눈 한 구석에서 일렁이는 램프의 주황빛 불빛을 사랑한다. 난 뼈처럼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 걸터앉아 있는 달을 사랑하고, 야식을 사들고 가는 덜컹이는 버스의 창가 자리를 사랑한다. 난 지나간 시간을 사랑한다. 기억 저편에 달짝지근한 향내를 풍기는 옛날의 모습과 생각들은, 지금의 내가 힘들고 지칠 때 하나씩 꺼내어 곱씹어 보면 힘을 준다. 난 한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를 사랑한다. 해가 너울너울 저무는 느즈막한 시간에 천천히 발바닥에 힘을 주어 가는 길, 그리운 것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는 길, 한 발자국 내딛으면 닿을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나른한 여름날에 눈 앞에 아른거리는 맛있는 상상을 사랑한다. 달디 단 생각을 하는 건 마음을 배부르게 한다. 그것도 사랑한다. 난 가까운 것들을 사랑한다. 멀리 있는 것은 마음이 달려가기에 너무 힘이 든다. 가까이 울리는 것-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도, 찬 바람에 뺨을 스치는 머리카락도, 손끝이 닿는 햇살도 사랑한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은 잘 모르겠다. 사랑을 하고 싶은지, 아예 하고 싶지 않은지조차 모르겠다. 난 아직 열아홉이고, 아직 날은 많이 남았다. 그래서 사랑이 뭔지 짐작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의 짐이고,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우물과도 같아서 우물이 바닥을 보이도록 물을 퍼주면 이내 마음이 메말라버리게 된다. 우물의 물은 퍼준대로 받아야 한다- 라고 대충 공식을 짜내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알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짐작만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정의를 내려버리면 그에 따른 모든 것들도 내 책임이 되어버리니까, 그 짐을 피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날은 많이 남았다.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