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이력

어제 밤을 새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하는 소녀 를 봤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한 해를 앞두고 있어 괜히 기분이 묘해지고 말았다. 내 학창 시절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새삼 기억도 안 나 ‘아, 이런 일도 있었지’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초등학교 땐 유난히 선머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엄마는 내게 언제나 예쁜 옷을 입혀주었는데, 그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뛰놀다가 옷을 더럽히는 일이 많았다 한다. 내 기억 속의 나조차도 얌전하고 상냥한 모습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떠올려 보면 남자애들과 소리 지르고 싸우고 욕했던 기억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모두와 무난히 잘 지냈었는데, 지금의 나와 달리 무척 활동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아파트 단지 앞 쪽에 버찌 나무와 살구 나무가 많았는데, 열매를 딴답시고 시소에 올라 낑낑거리거나 나무를 타겠다고 무릎이 까져온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조금 더 소극적이 되어버려서 말을 아끼게 됐는데, 그 당시에 사람과 교류하는 게 마냥 쉬운 것은 아니라고 처음 실감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아이들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사리분별이 더욱 명확해지니까. 그땐 툭 건드리면 울 정도로 예민해서 작은 것에 상처 받고 혼자 움츠려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이유란 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중학교 때 제일 믿음직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도 우여곡절이 많고도 많았지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방황하던 날 미궁 속에서 꺼내준 친구. 내가 정말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우습게도 내겐 그때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땐 오케스트라도, 친구와 나누던 대화도, 그저 살아가는 것도, 처음으로 뭔가를 그렇게 열심히, 하루하루 즐겁게 살았던 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중학교 시절도 끝이 났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뭔가를 갑자기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비단 학업뿐이 아닌, 다른 것도 말이다. 너무 앞서 달리면 안된다는 것도, 천천히 가도 된다는 것. 감정 소모가 많은 관계는 서서히 정리하는 법도. 무엇보다 기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마냥 주저하지 않고, 미련하지 않게. 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계속 걷는 법을 배웠다. 버스 옆자리에서 언제나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도,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 빛나는 친구도, 사람에 치이고 치여 매번 안쓰러워 보이지만 밝게 통통 튀는 친구도.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것에는 후회가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그 여운은 오래 남아 세월에 묻힌 추억들을 하나씩 끌어올렸다. 그 오랜 세월 빛나는 모습을 기억해주고, 좋아해줬던 주인공처럼 누군가는 내 시간을 떠올려줄까. 그 사람에게 그 시간은 어떤 형태로 보여질까? 내가 달려온 시간만큼 내 곁엔 그 시간을 옆에서 지켜봐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 청춘의 이력은 그들의 기억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청춘은 어떻게 비춰질까- 내가 힘들고 지쳐 너덜너덜해져도 그 기억만큼은 반짝반짝하게 비춰줄 사람이 있을까? 난 영원히 그 답을 알 수 없을 테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설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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