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밤

Korean March 27, 2017

지평선을 뒤덮던 햇살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황혼 속 빛의 시작과 끝을 구별하지조차 못하게 될 때, 나그네는 파도가 머물던 곳을 지나간다. 바다는 해가 지고 떠도 계속 말을 내뱉는마냥 울렁였고 발 아래 모래에 남겨진 발자국에는 그리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바다 속 손가락 사이를 가르는 얼룩진 물결에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그네의 발길이 지나는 모든 길에는 마음이 흔들린 흔적이 있다. 밤이 지나고 보낼 연서를 마음에 꼭 담아둔 채, 그는 발길을 바삐 한다. 반딧불의 향연은 그가 걷는 길을 비추고 그 흔들리는 불빛조차 그의 마음 한 가닥 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연서는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울렁이는 마음을 끝내 감추고 숨겨, 태가 나지 않을 때까지 삼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생각 한 켠에 잔뜩 요동치고 있는 그리움이 그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연서를 쓸 적을 생각했다. 연서를 쓴 종이를 고이 접어 봉투 입구에 예쁜 토끼풀 한 가닥을 묶어놓았던 그 손길을. 그도 안다. 사실 그 연서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음을. 마음을 삼키고 숨겨, 옮겨 적으려는 순간 그 마음은 두려워 꽁꽁 숨어버렸다. 그녀가 봉투를 열어 연서를 꺼내보아도 연서는 단어 하나, 또 마음 하나조차 속삭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그네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종소리 나는 아침이 와서, 그가 그곳에 다다랐을 때, 이것을 핑계로 닿을 수만 있다면, 그의 비겁한 마음도 조금은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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