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 마음을 담아서 원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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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몇 시간을 들여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여자의 얼굴이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새삼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잠시나마 의심도 해보았다. 조금은 부럽다고, 성경이 생각했다. 감히 사랑할 엄두도 나지 않는 성경에게 이렇게 베푸는 사랑은 낯설었다. 아주 작은 것들도 사랑해야 하는 그녀의 기구한 삶을 저주하기도 했다. 너무 작은 것까지 사랑해, 모든 것을 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경은 은빛 포장지로 감싼 딸기맛 사탕을 사랑했고, 낡은 책방에서 빌린 책 한 모퉁이에 쓰여진 낭만적인 구절을 사랑했으며, 언제나 옅게 로즈마리 향이 나던 엄마의 머플러를 사랑했다. 한 여름날 반의 좋아하던 아이가 그녀에게 사탕을 건넸을 때도, 몇 번째인지도 모를 전학을 가던 날 책을 책상 아래 두고 갔을 때도, 가을이 지나갈 무렵에 엄마가 집을 떠날 때도, 손을 뻗어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은 망각과 함께했고, 그녀의 사랑도 망각이 함께였다.

청, 내 온 마음을 담아서 중. 2016


요즘은 기분이 매우 이상하다. 허공에 붕 뜬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따금 바닷속 깊이 가라앉아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근황을 말하자면 난 한창 공연 준비로 바쁘다. 게다가 공연 다음주가 기말고사라 바쁘게 지내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요즘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한없이 내 손틈 사이로 흘러가는데, 정작 난 내 두 손에 주워 담은 것이 없어 두렵다. 그렇기에 내 빈 손을 본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말을 아끼고 손을 감추게 된다. 피하는 것만이 결코 상책은 아닌데, 두려움을 내세워 그 뒤에 꽁꽁 숨기만 하게 된다. 앞으로의 남은 시간이 무섭다. 내가 훗날 뒤를 돌아보며 무능했던 자신을 저주하고 손가락질할지 모르기에. 뭐가 어찌 됐든,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오늘의 곡은, 곧 크리스마스니까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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