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에 대한 고찰

Today’s Recommendation: Sergei Rachmaninoff – 18th Variation from Rhapsody on the theme of Paganini

예전에, 그러니까 몸이 성할 때에는,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달려본 적이 있다. 다리가 제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만큼 달리면, 머릿속은 어째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내 볼을 스치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듯한 느낌으로 몸이 가벼워진다. 그 가벼움에 중독되어 달리다보면, 어느새 출발했던 곳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다. 몸이 성치 않은 지금은, 이런 꿈들을 자주 꾼다. 이것은 내가 소설에 자주 등장시키는 것이기도 한데, 아득하고 그리운, 그런 포근한 느낌을 품고 있는 것이다. 물에 가라앉는 꿈을 꾼다. 몸을 던졌던 물의 수면은 눈 앞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쪽빛을 머금은 파도에 감싸져 가라앉는다. 그리고 또 다시 장면은 바뀐다. 나는 왜인지 드넓은 공터같은 곳에 홀로 서 있고, 쭉 뻗은 길 앞에는 큰 나무가 있다. 바람은 불고 있고, 나뭇잎은 떨어지는데, 그저 바라보는 것 마저 벅찬 느낌이었다. 느긋하고 나른해서, 아무 생각도 않은 채 내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그저 내 자신을 맡기기만 하는게, 지금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냥 쉬고 싶다. 그냥 몸만 쉬는게 아닌, 모든 인간 관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나는 관계의 무게를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떠안으려고만 했다. 우리 모두에게 가치의 정의란 다르기에 그것을 모두 받아 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유지시키는건 생각보다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고, 내가 그 관계에서 비롯한 감정을 떠안을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18살이나 됐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나는 여전히 너무 어리고 무지하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넘쳐 흐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체하지 못해 끝내 마음 속에서 터져버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 사람들은 벽에 몸을 부딪혀 깨부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왜 모를까, 결국 부숴지는 것은, 벽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그래서 난 계속 꿈을 꾸고 싶어한다. 그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에 눈을 감아버리면, 이런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니까. 18살. 생각보다 할 일은 너무 많고, 생각보다 생각해야 할 것은 너무 많다.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