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일생의 단 한번, 어리숙하고 채 익지 않은 감정이 섞이고 섞여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마냥 피어 오르면서, 손과 손이 맞닿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울렁일 수 있다는 것, 첫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아직 어리고 수줍은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다 현실에 맞닥뜨려 환상이 깨지면 그제서야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그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설사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바스라져 다른 기억의 파편 사이로 파묻힌다 해도, 때때로 남은 조각들은 빛을 내어 반짝거린다. 그래서 그 누가 뿌리칠 수 있겠는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삶에 치이고 지친 마음을 안고 걷다 보니, 길에 끝에, 햇볕을 받아 살짝 달궈진 얼굴로, 그 환한 미소를. 힘들었던 내게 내민 손을 그 누가 뿌리칠 수 있겠는가. 상상해보길 권한다. 푸른 언덕 위에 햇빛이 사르르 내려앉아 있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마음 속 꽁꽁 숨어있던 기억들을 되살려준다. 그리고 그 끝에는 그 사람이 있다. 그 누가, 부정하겠는가. 난 이것을 불가항력이라고 부른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꽤나 사소하다. 꿈에서 2년간 좋아하던 선생님이 나와, 난 그것을 글로 옮겨 적은 것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그 당시 나의 어린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고보면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이상하다. 저항하지 못하는 힘, 불가항력. 사람의 감정과 감정 사이에 숨어든 오묘한 힘. (물론 내 경우에는 일방적이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딱 이게 뭐다, 하고 정의 내리지 못하는 힘.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즐거웠다. 매주 오케스트라 시간 때마다 하얀 바이올린 케이스를 어깨에 매고 선글라스를 끼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던 선생님이 뭐가 그렇게 멋졌는지 선생님께서 내 옆을 지나거나 말을 걸어주실 때마다 내 자그마한 비밀을 아는 친구는 이후 등을 그렇게 두드려댔다. 젊으신 분이다, 지금도 고작 이십대 후반…은 아닌 것 같고. 서른 초반? 서른? 뭐, 지금은 상관 없겠지만. 오케스트라 연습이 끝나면 같이 하교를 하곤 했다. 선생님께선 끝나자마자 바로 가시기 때문에 악기를 챙기고 가방도 싸야 했던 내 손놀림이 무척 빨라야 했던 때였다. 콘서트에 초대하시면 되도 않는 화장을 친구에게 받고 생전 안 입던 원피스를 입고 나갔다. 지금도 그러한 날들에 선생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 아직도 벽에 걸려 있다. 선생님과 오케스트라가 모티브였던 내 첫 책, 봄날의 로즈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글이라기 보단 자기 만족을 위한 글이다. 그 원고를 굳이 책으로 내겠다고 한 것은 내 고집이자 욕심이었다. 쓰는 동안 즐거웠고, 내가 마치 소이레 마을의 한 일원이 되어 로즈와 이리의 일상을 관찰하며 글로 끄적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처음으로 내 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김에 덧붙이자면, 이리 이브의 이름은 선생님에게서 따온 것이다. 이리, 라는 이름은 분명 동양인의 이름이지만 철자를 바꿔 프랑스식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 외에, 소설 주인공 이리와 선생님 간에 공통점은 전혀 없다. 이것은 한번도 남에게 말한 적 없는 사실이다. 물론 선생님 본인조차도. 여중에서, 그 흔한 연예인, 가수에게 흥미가 없었던 난 들끓어오르는 감정을 부을 상대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을 따라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고, 선생님이 언제나 보내주시던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키워나갔다. 지금도 사실 혼란스럽다; 난 선생님을 좋아한 것인지, 선생님을 좋아했던 내 감정을 좋아했던 것인지. 비록 지금은 현실의 벽에 맞닦뜨려 겁이 많아졌고 소심해졌지만, 어리고 철이 없어 무모했던 행동과 마음, 돌이켜보니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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